지난 월요일이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메모리얼 데이이고 한국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기 때문에 이날은 두 나라에 함께 연휴일 이었다. 경건하게 맞아야 할 지 휴일이니 신나게 즐겨야 할 지. 나와 절친한 친구가 점심을 하자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늘 만나는 중국식당에 갔다.
그 친구는 내가 전에 이야기 한 말과 같은 말을 다른 글에서 보았다며 화제를 먼저 끄집어냈다. 로베르토 암푸로의 작품 ‘네루다 사건’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칠레의 시인 파브로 네루다가 “시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옮겨준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내가 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주님과 석가는 우주의 진실은 말(언어)로 되어 있고 이것을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 화신 하셨다는 두 종교의 신비스런 공통점을 얘기 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는 진실을 법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와 함께 특히 시는 그 우주의 신비와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신불 중 법신불과 화신불이란 우주본래의 마음, 즉 법이신 부처가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불경의 법이란 진실을 말한다면 우주의 진실이 인간으로 화신 했다는 말이며 그분이 곧 부처님이라는 말이 되겠다.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일장일절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 이시니라"라고 기록 되어 있다. 태초에 주님과 함께 있은 말씀이란 진리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화신(incarnation) 하셨다는 말이다.
나는 수십 년 전에 칠레에서 온 동료에게서 네루다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우편배달부(Il Postino)라는 영화에서 네루다가 신비한 시인으로 표현된 것을 기억한다. 네루다를 좀 더 읽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엘 와서 한국일보를 펼쳤다. 지난 22일자 5면에 “기독교와 불교가 만난다"는 아메리칸 대학의 박진영 교수의 강연회에 대한 기사가 보였다. 아직도 친구와의 대화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그 참 신기한 우연의 일치로구나 하며 페이지를 넘기니 오피니언 란에는 “참새로 오신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성프란시스 한인성공회 최영권 신부께서 이 지역에서 널리 알려졌고 작년에 열반하신 경암 스님을 기억하면서 석탄일에 맞추어 이야기를 하신 것이 보였다. 경암 스님이 참새를 보내어 안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와 배타적이 아닌 불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점점 오늘 일어난 일들이 기이하다는 상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춘원 이광수의 단편 ‘육장기’을 번역을 정리하는 일이다. 춘원은 이 글에서 우리인생과 새들을 연결한 비유를 계속했고 책 전체가 법화경을 바탕으로 해서 사바세계에서 사는 고통과 인과와 윤회 이야기로 차 있다. 그런데도 그 책은 성경 시편 100장으로 끝을 맺었다. 오늘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로구나. 이 모두가 인과일까 혹은 주님의 섭리인가 하는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날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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