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어쩌면! 누가 그처럼 딱 맞는 이름을 지었을까? 꽃한테 꽃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 있을까? 그야말로 찰떡궁합 이름 아닌가!” 어린 시절, 꽃을 들여다 보며 감탄하곤 했다. 물론 꽃만은 아니다. 구름을 보면 누가 구름을 구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그것도 기막히게 적합해 보였다. 구름, 구름, 구름을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른들 구름만 하랴? 바다, 산, 개울,…. 다 딱 맞아 떨어지는 이름들이다.
“나그네는 어디 계시요?”
“예?” 알아듣지 못한 내가 되물었다.
“나그네요. 어디 가셨시요?”
“누구 말씀인지….”
“그럼 혼자 신가?” 내게 질문했던 여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여기선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잖슴.” 어리둥절한 내게 옆에 있던 사람이 설명했다.
“아아! 남편이요!” 그제야 알아듣고 웃었다.
1984년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거두어 올리던 시절, 중국 구경도 하고 백두산, 천지연도 보러 간다고 만주벌판을 지나며 만났던 조선족과 나누었던 이야기다. 오늘도 그곳 조선인들은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는지 궁금하다. 이미 30년도 넘었으니….
그때 중국은 말 그대로 요지경 같았다. 특히 배달민족의 후예가 사는 만주 연변지역은 더 그랬다. 자그마치 백만이 넘는 우리 민족이 아직도 6.25전 함경도 사투리를 하면서, 경상도 전라도처럼 한국의 한 도라도 되는 듯이 모여 한국말에 한국 음식 먹으며 살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6.25 전 한국을 가 보는 기분이랄까?
미국 사는 우리는 아직도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을 우리나라라 칭한다. 문화나 생활은 영락없는 배달민족의 후예인데 말이다. 한국을 부를 때는 북 조선, 남 조선하고 부른다.
남편을 나그네라 칭하는 것은 이들만의 사투리일게다. 일본강점기 시대 항일 투쟁하느라, 아니면 돈벌이하러 떠돌아다니느라 …. 이런저런 이유로 오다가다 들리는 나그네 같은 남편이어서 나그네라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는 것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살아도 마음은 어딘가를 붕 떠돌아다니기 잘하는 나그네, 김삿갓 끼가 다분한 나그네. 자신을 “역마살이 낀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남편 역시 수긍이 가는지 빙긋 웃으며 나그네란 명칭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혹은 자신을 “나그네”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이 다 나그네 삶이라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늘 흩뿌리며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간다는 박목월의 나그네의 한 싯구처럼…. 아니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어머니 날이면 더더욱 자식앞에 든든하고 당당해 보이는 엄마의 자리. 그와는 달리 아버지 날이라고 떠들기는 해도 양복에 갓 쓴듯 서로 주소가 틀린듯 싶기도 하고, 남의 옷 빌려 입은듯 헐렁키도 하고, 어딘가 한쪽이 비어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우리네 아버지…. 왜인지 자꾸 나그네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만주의 배달민족이 남편대신 지어낸 이름, 나그네. 딱 맞아 떨어지는 이름 같다 해서 내가 틀린 소릴까?
꽃한테는 꽃이라는 이름이 최적이라고 느끼는 마음, 구름한테는 구름이 딱 맞는 이름이라고 느끼는 내 마음이, 남편이라는 말 대신 “나그네”를 생각해 본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나그네…. 지나는 바람따라, 시간따라 일년에 한번 오는 아버지 날에나 등골 휜 아버지 모습 보는 우리….
“여보, 나그네….”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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