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틱 오키드(Exotic Orchid) 또는 온시디엄(Oncidium) 오키드 라는 이름의 난(蘭)이 있다. 꽃의 모양과 색상도 특이하거니와 난의 몸통 자체가 소담스럽고 맛있게 빚어 놓은 떡 같다. 영양분 가득하던 몸통이 할일을 다한 듯 우글쭈글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고 있다. 한 두개의 분지(分枝)를 내밀면서 그런대로 현상유지는 하고 있으나 분갈이를 할때가 지난 것 같다. 큰마음 먹고 분갈이를 시도해 본다. 새로 사온 오가닉 오키드 믹스 옆에 놓고 화분을 한 손에 들고 엎어서 뿌리 등은 상처 나지 않게 빼냈다. 묵은 흙 털어버리고 말라가는 뿌리를 정리한 다음 장갑 낀 양손에 난의 몸통을 쥐고 힘을 주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갈라졌다. 화분 밖으로 뻗어 나온 새 가지 역시 쉽게 잘라내니 난 화분 하나가 셋으로 불어난 셈이다. 잘 자라 줄 것을 바라며 유리 테이블 밑 반 그늘진 곳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나가서 보니 묵은 화분에 심어져 있을 때보다 훨씬 싱싱해져 있었다. 그 빵빵하게 탐스럽던 몸통에 얼기설기 새겨진 주름을 보다가 문득 사람 얼굴에 생긴 주름을 연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노경(老境)에 이르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지만 노안에 생긴 주름이라고 다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역정의 결과이기에 나타난 주름의 모양 또한 다양하다. 짧게 또는 길기도 하고 얕게 또는 깊이 파인 것도 있다. 혹은 가느다란 곡선 또는 회기선 등등. 명주같이 고운 살결에 연못에 파문 일듯 곱게 그어진 선비형의 주름도 있고 시골 농부의 구릿빛 얼굴에 투각한 듯 깊이 새겨진 주름은 건강함의 상징이고 그 사람 인품의 성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분들은 외모와는 달리 눈빛도 온화하시고 단정한 삶을 살아오셨기에 덕망 또한 높다. 반면 심성이 고약하기가 구곡양장 같은 사람들은 얼굴에 새겨진 주름조차 생각하기 역겹다.
벌써 6월, 세월의 흐름이 폭풍 만난 뜬구름 같아서 금년도 일 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곧 아버지날이다. 오지(奧地)의 소읍에서 살면서 일곱 살이던 나에게 천자문을 깨우치게 해주신 아버지. 일반적으로 10명 정도의 다산(多産)이던 시절, 무남독녀로 천혜의 자연풍광을 만끽하며 자라 온 어린 시절, 항상 계절을 한 발 앞서서 먹을 수 있었다. 어느 해인가 탐스럽게 잘 익은 딸기 대바구니에 가득 담긴 것을 보고 먹지도 않으면서 사달라고 응석 부리던 나에게 “딸은 하나 있으면 됐다. 또 사서 뭐할라꼬"하시며 웃음을 유도하시던 그 예지. 이른 봄 늦잠 자고 일어나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 노곤한 봄잠은 새벽임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잔다는 뜻)라고 읊은 것을 들으시고 흐뭇해 하시던 아버님의 넓은 이마에 새겨진 주름은 가늘고 거의 직선에 가까운 선비형 주름, 인자하셨던 아버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그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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