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회기가 늘어나고 내담자와 신뢰가 쌓여가면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묻는다. 지금 내담자가 지닌 가치관과 세계관의 많은 부분이 어린시절 부모님이나 양육자로부터 전달되고 가르쳐진 게 많기때문에, 초기 기억들을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등 내담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간 발달을 이야기할 때 많은 심리학자들은 출생 후 3세까지를 자아가 형성되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본다. 특히 처음 18개월은 애착을 형성하여 낯선 세상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어떤 이유로든 양육자와의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서도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들이 많다.
어린 시절의 많은 일상들 중에서 유달리 어떤 사건이나 장면이 기억으로 저장됬다는 것은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양육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어린 아이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형성한다. 아이들은 양육자의 반응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 간다.
유교사상이 팽배한 가정에서 아들을 간절히 기다렸는데 딸로 태어나 환영받지 못해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로 느끼며 사는 여성 내담자들을 종종 만난다. 3세 이전의 양육자의 반응이 기억이 안 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가치가 없는 존재’란 가치관이 내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안타깝다. 반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부모가 비춰준 자신의 이미지가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었기에 자신의 장애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밝게 살고 있는 내담자도 만났다.
그 다음으로 7살까지를 발달의 중요한 시기로 보는데 많은 어린 시절 기억들이 저장되는 시기다. 가끔 이 시기의 기억을 거의 못하는 내담자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는 레드 플랙 (red flag)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픈 기억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방어기제가 작동했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든 원치 않는 기억들이 눌려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신뢰가 쌓여진 상담사와 아픈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고 대면하는 일은 치유와 회복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기억을 다루다 보면 아직 뇌의 발달이 미숙할 때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기억들을 종종 본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Piaget) 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7세 전까지 아이들의 사고는 논리보다는 직관적인 지각에 의해 사고하여 이치에 맞는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자신을 객관시하거나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이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여 자기 자신을 사물의 중심이라고 믿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나 부모의 반응에 대해 ‘내가 잘못해서 부모님이 이혼하는구나’ 등의 잘못된 인식과 논리를 갖게 된다.
내담자의 허락을 받고 한 분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5-6살때 알콜중독자인 아버지가 술을 먹고 집에 와 엄마를 때리고 살림을 부수면 3살된 남동생과 곰인형을 들고 이웃집으로 도망을 가곤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미워한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들을 나누던 중 "어! 나도 아버지와 이런 좋은 추억들이 있었네’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았겠지 생각해 원망하며 살았는데, 돌아보니 아버지의 알콜중독은 질병이었던거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두 가지의 사실을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됬다고 한다.
누구나 마음 한곁에 묻어둔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뇌가 미성숙하고 논리가 부족한 어린 시절에 잘못 해석하여 아픔이된 기억이 있다면 성인이 된 지금 다시 해석하고 써보는 작업을 해보자.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조금 가벼워지고 결국 나를 위한 ‘용서’를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counseling@fccgw.org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