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경남과학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다녀갔다. 약 5년만의 재회였다. 내가 2010년 가을에 경남교육청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강연 등을 했을 때 초청행사 진행을 책임졌고 통영, 거제, 해인사 등으로 직접 안내까지 맡아 주셨던 분이다.
이번에 다녀 간 이유는 오는 10월에 경남과학고 1학년 학생들 모두가 1주일간 미국을 방문할 때 이 곳 워싱턴 지역도 다녀갈 계획이기에 사전 현지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학교의 1-2학년 학생수가 각 100명 정도인데 반해 3학년 학생은 10명 조금 넘는데 그친다. 그 이유는 2학년을 마치고 조기졸업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기졸업은 한국의 다른 과학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우수한 과학고등학교에서는 2년 내에 3년 과정을 전부 마치는 학생들에게 조기졸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이러한 조기졸업제도를 보면서 이 곳에서도 배울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2년 전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버지니아 주 고등교육위원회 의장 그리고 주 교육감을 초청해 정책 논의를 가졌을 때, 이러한 점에 대해 주정부 차원에서의 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토요일 종일 회의에서 졸업학점제도에 관해 논의를 가졌을 때도 거론했다.
현재 미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학점 취득제도를 살펴보면 모두 이른바 ‘카네기 학점제도’라는 것을 따르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선 1학점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120시간의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50분 수업으로 환산하면 144번, 40분 수업으로 하면 180번의 수업시간을 필요로 한다. 미국 내 대부분 학군의 일년 법정수업일 수가 180일인 것을 고려한다면, 일년 내내 40-50분의 수업을 받아야 1학점을 취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에 의한 학점 취득 방법에는 사실 비효율적 요소가 존재한다. 즉, 어떤 과목의 교과과정 내용을 180일 수업을 모두 받지 않고서도 습득했는데 불구하고 학생들을 무조건 180일 동안 계속 잡아 두는 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재원의 낭비이다. 어떤 평가 방법을 통해 교과과정이 요구하는 수준을 성취한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다른 과목들을 택할 수 있게 허용해 주거나 더 나아가서는 조기졸업도 허용하는 것이 경제적 논리에 맞는 것 같다.
페어팩스 카운티 내에 위치한 어떤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에서는 11학년 학생들 모두 한 학기동안 인턴십을 한다고 한다. 공립학교에서도 카네기 학점 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에게 이러한 인턴쉽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학년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가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수업을 등한시 하고 시간을 낭비할 때, 학생들에게 사회 경험을 하거나 사회생활에 좀 더 실질적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조기졸업도 한국처럼 가능하다면 학생들이 일년 일찍 대학에 입학하거나 대학입학 전 봉사, 여행, 진로탐색 등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갭이어(gap year)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주 정부 차원에서 학점취득에 관한 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어떤 과목들에 이러한 새로운 학점취득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해 심층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다양한 그룹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거나 그에 따른 논란이 야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학생들에게 좀 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하고 시간이나 재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는 일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동의한다면, 당연히 심도있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나에게 미소를 머금게 해 준 것은 지난 주 지역 언론에 보도된 워싱턴 디씨 공립학군 교육에 관련된 한 기사 내용이었다. 워싱턴 디씨의 고등교육위원회가 학점취득에 융통성을 줄 수 있는 방법 연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디씨도 검토하는 부분을 버지니아 주가 못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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