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서둘렀다. 후드득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실망스러워 멈칫거리다 문을 나선다.
어제 저녁 우연히 TV에 소개된 시리아 난민들의 얼굴이 내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아 그대로 산보 길을 재촉한다. 아니, 내 머리와 심장 속으로 긴 파장을 남기며 지나간 한 사진 장면! 한 여인이 네 아이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여인의 네 어린아이들이 예의 시리아인들의 아름다운 큰 눈을 껌벅이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중에 5-6세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의 손에 귀한 보물인 양, 죽어도 안 놓을 것 같은 웅켜 쥔 손. 그 손에 움켜쥔 미국의 구호품 허쉬 초콜릿 포장 껍질이 저녁 내내 응어리가 되어 내 머릿속과 내 세포 마다 남아있었다.
나도 그 소년의 나이 쯤 일 6.25 전쟁 때 키가 무척이나 커다란 미군이 준 허쉬 초콜릿을 운 좋게 하나 얻어서 동생과 나눠 먹은 기억이 난다. 그 껍질에 배인 향기로운 천국의 냄새를 맡으며 잘 때도 누가 뺏어갈까 조그만 손에 꽉 움켜쥐고 잠을 자던 생각이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사진 속 소년을 생각하며 기도를 한다. 그때 피난길에 작은 가슴으로 들이 마시던 미국 구호품 허쉬 초콜릿 냄새가 지금 이 미국 땅에 나를 서게 한 것은 아닐까?
건강이 나빠지셔서 식구들이 할 수 없이 양로원에 모신 친정어머니. 90세 어머니는 말이 통 없으시며 항상 고요한 호수 같지만 가끔씩 그 전쟁 길의 아픔은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털어놓으신다.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아픔의 상처가 아직도 가슴을 떨리게 하는 모양이다.
어제 교회에서 ‘8.15 해방 70주년 죽으면 죽으리라’란 제목의 설교를 감명 깊게 들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전쟁선포, 끔찍스런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과 그 참상의 사진, 미 함상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 받는 맥아더 장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에 이은 한국의 해방, 6,25 전쟁의 참혹함, 오늘의 한국의 실상, 미국 한인 이민1세와 2세들의 실상을 보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조그만 입자로 살아가는 나를 생각하게 된다.
광복동이인 나도 이제 70이라니...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 덧없이 살아온 세월 이지만 지나온 발자국마다 수많은 책으로 엮어도 다 못할 인생의 소용돌이 속을 용케도 견뎌 나온 우리 어머니 세대들, 우왕좌왕 쫓기면서 어지럽게 남겨놓은 형체조차 뭉개진 그 발자국의 아픔들이 승화되어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 일게다.
TV에 소개된 허쉬 초콜릿 포장지를 움켜 쥔 조그만 손이 너무 안쓰럽다. 잔인한 역사의 시간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기도할 때 인가보다.
하늘은 언제라도 한바탕 비를 뿌릴 것 같다. 풀벌레 소리가 지나가는 여름을 알리고 산보길가 집집마다 화단 꽃나무들도 짙은 색으로 농익어간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산보길 걸음이 빨라진다. 화실로 둔갑한 나의 리빙룸이 오늘따라 왜 이리 궁전 같아 보일까? 이제 내 나이 70! 영상 속 피난길 시리아 어머니와 아이들의 고통의 신발을 내가 신어봐야 하지 않을까. 교회에서 봉사 나가는 워싱턴 프랭클린 스퀘어의 홈리스들에게 더 진심어린 맘으로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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