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장애우들의 부모님과 그들을 섬기는 봉사자들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얻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오며, 이제는 성인이 된 장애인 자녀를 키워내며 겪었을 부모님들의 눈물과 아픔과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설레임으로 기다리던 부모님들이 품었을 소중한 꿈들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처럼 내 마음에 쓸쓸히 지나갔다. 지금의 장애인 자녀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래 전 품었던 꿈의 상실과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장사지내는 애도의 과정이 필요 했으리라. 우리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과 깨어진 만남들도 있다.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처럼 살고 있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마음이 쓸쓸해지는 일이다. 결혼 전 꿈꾸던 행복한 가정이 더 이상 내가 가질 수 없는 환상임을 알 때 우리는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때로는 거울 속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에서도 돌아갈 수 없는 젊음과 팽팽함에 대한 상실감을 느낀다. 어찌보면 산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상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상실을 경험한다. 상담 중에 내담자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많은 문제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대부분은 가족-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대한 상실이다. 냉정하고 의존적인 엄마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담자에게 ‘이제는 꿈꾸고 바라는 엄마의 모습-자애롭고 따뜻하고 받아주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을 눈물과 함께 땅에 뭍으라’고 했다. 60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온 엄마가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이제는 놓아야 한다. 배우자와의 갈등이 힘들어 상담소를 찾는 이들이 많다. 연애 때처럼 다정하고 듬직하고 책임감 넘치던 남편의 모습은 이제 온데 간데 없다며 힘들어하는 아내는 예전의 남편의 모습을 이제 장사 지내야 한다. 싹싹하고 순종적인 현모양처이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척척 해결해내는 수퍼우먼을 바라는 남편이 있다면, 이제는 바라던 아내의 모습을 장사 지내야 지금의 아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 희망이던 자녀가 이제는 아픔이라면 옛날 자녀의 모습을 내려놓고 지금의 자녀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꿈꾸지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다. 그 것은 내가 꿈꾸는 것에 대한 상실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이별하는 것과 비슷한 애도의 과정을 거친다. 첫 단계는 지금 상대의 모습을 부정하며 상대를 비난하고 바꾸려는데 에너지를 소비한다. 상대만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배우자나 자녀에게 계속적인 잔소리를 하며 정당성을 부여한다. 둘째는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상대에게 분노하는 단계다. ‘왜 난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지?’란 질문을 계속하며 운명을 저주하거나 신에게 분노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스스로를 자책한다. 다음은 상대와 타협과 협상을 하는 단계다. 상대를 바꿀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해주면 나는 이렇게 할께” 등의 협상을 계속한다. 그러나 상대는 좀처럼 바뀌지 않으므로 시간이 더 흐르면서 우울과 절망감을 느끼는 단계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사가 귀찮고, 우울, 불면, 식욕저하 등을 경험하고 깊은 상실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결국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내가 꿈꾸고 바라고 만들어 놓은,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관에 넣고 땅 속에 장사 지낸 후 슬피 우는 애도의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지금 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수용 단계에 올 때 비로소 우리는 ‘이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질문 앞에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counseling@gmail.com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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