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다’는 뜻의 그리스어 ‘디아스포라(diaspora)’는 조국을 잃고 뿔뿔이 헤어져 살던 유대인을 가리켰다. 오늘날에는 외부적 요인으로 살던 터전을 떠나 외국에 흩어져 사는 모든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이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구슬프기 짝이 없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에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부터가 고난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는 역사의 조난자라고도 불린다.
한국인의 언어 속에도 디아스포라의 아픔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묻혀있다. ‘화냥년’ ‘호로 자식’ 등의 비어가 그것이다.
세 살 아기가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와 함께 새삼 난민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고 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맨, 리비아 등 내전이 벌어진 중동ㆍ아프리카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처럼 오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던 터전을 떠난 난민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6000여 만에 이른다.
이 현대판 디아스포라의 처절한 행로에 세계는 무관심했었다. 그러다가 세 살 배기의 죽음으로 그 망각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역시 유럽이다’- 한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 시민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정부는 여전히 우물쭈물 댄다. ‘난민을 받아들였다가는…’ 이런 계산과 함께 소극적이다. 그러자 인권단체들이 나서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호응, 국경을 열어젖히라는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수백, 수천억의 오일달러를 움켜쥐고 있다. 게다가 같은 아랍계에, 같은 회교도다. 걸프지역의 산유국들, 다시 말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은 그러나 ‘나몰라’다. 그들의 아픔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대조돼 하는 말이다.
시리아 난민 사태는 한국으로서는 ‘강 건너 불’일까. 아니다. 시리아를 탈출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지난 5월말 현재로 713명에 이른다는 정부 발표다. 그런데 그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불과 3명으로 밝혀졌다.
한국 사회의 이정표적 변화의 하나는 이민 수출국에서 이민 수입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 변환의 분기점이 되는 해는 1999년이다. 한국이 선진국 형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하면서 외국인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 총인구는 174만 여명(올 1월1일 현재 기준)으로 외국인 거주자를 처음 집계한 2006년(54만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이와 동시에 달갑지 않은 오명(汚名)이 따라다닌다. ‘한국은 최악의 인종차별 국가’라는.
교육수준이 높고 부유하다. 그런 나라일수록 외국인, 그리고 난민에 관대한 편이다. 한국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출신 외국인에게 특히 차별적인 국민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유엔의 지적사항이다.
못 사는 외국인에 우쭐대는 모습. 그게 바다 건너 한국에서만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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