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아침 저녁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제법 묻어난다. 느슨하게 널부러져 있던 마음에 여러 생각들이 찾아든다. 삶이란게 원래 예측불가한 다양함과 복잡함을 안고 가는거니,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는 사람이나 일들이 늘 오고 간다. 그래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고 노래한 시인처럼 새로운 의욕이 꿈틀거린다.
‘이 가을에 책 좀 읽어볼까’ 혹은 ‘음악회’ ‘여행’ 혹은 ‘미술관’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면 그래도 살만하다는 증거니 ‘감사’란 단어도 함께 떠올려 보자. 혹시 사람과의 관계나 애정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적어도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와 삶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 욕구’는 일단 해결된거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옛말처럼, 가끔 멈춰서서 가진 것을 세어보지 않으면 내가 가진건 당연한거고, 못 가진건 결핍이란 착각을 하기 쉽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은 어떤 욕구가 채워지면 잠시 만족하다가 다른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가 채워지면 또 다른 욕구가 순차적으로 생기는데, 이를 채우기 위한 단계와 순서가 있다’고 한다. 한가지, ‘욕구’로 번역된 원래 단어는 ‘need’인데, 욕구란 단어가 보통 ‘desire’ ‘want’ 등 꼭 필요한게 아닌데 욕심 내는 듯한 뉘앙스를 주지만, 여기서의 욕구는 필요 (need)를 말함을 짚어둔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첫 단계는 생명 유지를 위한 의식주의 ‘생리적인 욕구’이고, 둘째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된 후 나타나는 ‘안전(safety) 욕구’다. 신체적 위협이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있는 안전하고 보호 받는 환경에서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픈 욕구이다. 좀 더 안전한 동네로 이사하거나, 노후대책이나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행동들이다.
세번째가 ‘소속과 애정 (belonging & love)의 욕구’인데 안전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통한 소속감과 애정을 나누고 싶어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딘가에 속하고, 그룹의 일원이 되어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인정 받고 자아 성취를 이루는 것보다 더 앞서는 중요한 욕구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를 ‘연애, 결혼, 자녀를 포기한 3무 세대’라 부르는데, 매슬로의 이론에 의하면 미래의 큰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안전욕구가 채워지지 못했기에, 연애나 가정을 통한 소속감과 애정을 누리는 욕구를 꿈꾸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네째 단계는 ‘자기존중 (self-esteem) 욕구’로 소속된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다. 존중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열등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때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함으로써 자기 존중을 이루는 어긋난 방법을 택한다. 위의 네가지 욕구가 다 충족될 때 비로소 인간은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최고의 욕구이며, 다른 욕구와 달리 욕구가 충족될 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위의 다섯가지 욕구는 중첩되서 일어나기도 하고, 채워진 욕구가 결핍될 때 다시 하위욕구로 돌아가기도 한다.
끝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번째 ‘안전 욕구’와 세번째 ‘소속과 애정 욕구’의 관계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 당하고 신체적·정신적인 폭행과 학대를 당할 때 소속된 곳을 떠나거나 관계의 거리를 두어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경우 안전욕구가 위협 받음에도 불구하고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관계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적인 학대를 견디는데, 이는 두개의 욕구가 뒤바뀐 위험한 경우다. 이런 경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는것이 선행돼야함을 인식하여 폭력과 학대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필요시에는 정부기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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