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은 ‘가정 폭력 인식의 달 (Domestic Violence Awareness Month)’이다. 만나는 내담자들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곳이 가정이고 그들의 회복과 힐링을 돕는 사람으로서 가정폭력에 대해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일은 상담사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 믿는다. ‘폭력’이란 단어 앞에 우리는 언뜻 신체적 폭력만을 떠올리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한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하다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가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치유와 회복이 더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래 전 보았던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이 생각난다. 바닷가에 창문이 넓은 집에 살고 있는, 남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인이 남편의 폭력과 성적 학대에 못 이겨 집을 탈출하여 새 삶을 찾았는데, 어느날 문득 나타난 남편이 자신을 위협하자 결국 총을 쏴 죽인다는 무섭고도 슬픈 내용이다. 오늘도 가정폭력 아래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잠자리에 눕는 피해자와 아이들을 생각하니 ‘적과의 동침’이란 영화 제목에 마음이 싸해진다.
오늘은 모두 알고 있는 신체적 폭력은 제외한 은밀하게 숨겨진 넓은 의미의 가정폭력을 알리려 한다. 여기에는 강제적인 성관계, 감정적 학대와 언어 폭력, 경제적 위협이나 이민 관련 협박도 포함된다. 스케쥴을 계속 체크하고 옷 입는 것 등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하고, 심한 질투로 누굴 만나는지 등을 통제하여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것도 가정폭력이다. 매사에 “너 때문에”란 비난을 일삼아 죄책감을 유발시키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죽겠다”나 “죽이겠다”는 협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도 명백한 폭력이다. 이런 폭력에 계속 노출되면 ‘난 할 수 없고 가치없는 존재니 이런 대접을 받는게 당연해’라고 세뇌되어 가해자의 통제 안에 더욱 갇히게 된다.
가정 폭력에 대한 몇가지 오해가 있다. 가정 폭력은 홧김에 나온 순간적 행동이라고 가볍게 여기거나, 다시는 폭력을 하지 않겠다고 사과하고 약속하면 믿고 받아주지만, 가해자들의 폭력 행위는 상대을 통제하기 위한 학대적 행동의 반복적 패턴이기 때문에, 자책과 약속으로 해결되지 않으므로 전문적인 치료와 교육이 꼭 필요하다.
때론 피해자의 잘못된 행동, 술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가해자가 폭력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장하면서 폭력을 상황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걸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80%의 가정폭력의 가해자들이 아동기에 가정폭력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였고, 어린 시절에 가정 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커서 폭력을 행하는 남자에게 끌려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피해자들이 ‘자녀들 때문에 참으니 자녀가 떠나면 관계를 끊을거라’ 믿고 있지만, 이미 무기력해지고 세뇌된 피해자는 경제적 이유, 신분 상태, 두려움, 종교적인 이유, 고립된 상태 등 여러 이유로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공격적이고 무서운 사람들일거란 생각도 큰 오해인데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매우 평범하며 일반 정상인처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사회적인 평판이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 주변의 가족 중 한 명이거나 친구, 직장 동료 일 수도 있다.
한인들은 가정 폭력에 있어서 타 아시안 민족에 비해서도 가장 낮은 신고율을 보이고, 외부의 도움을 청하는 일에 소극적이고 신고 해야한다는 의식도 가장 낮다고 한다. 도움을 받기 위한 첫 단계는 ‘인식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적이, 혹은 이웃이나 동료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내가 보이지 않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네’라고 깨닫기도 했을 것이다. 그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정부나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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