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빛깔을 뽐내던 나뭇잎들이 땅에 딩굴고 나목이 되어가니, 이제 곧 매서운 칼바람이 날리고, 꽁꽁 얼어붙은 대지는 흰 눈 밑에 침묵하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은 새 봄의 도약을 위해 조용히 정기를 축적하는 기간이다.
한 아이가 기계소리 시끄러운 공장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회중시계를 잃어버려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 아버지는 모든 기계의 전원을 끄고 기다려 보자 했는데, 정적 후에 “재깍 재깍”나는 소리로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삶이 소란하고 바쁠때 잠시 침묵하며 영혼 깊은 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교훈으로 들린다. 사람이 태어나 “말을 배우는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라는 말이 있다. 침묵은 쉽지 않다. 가톨릭의 영성 훈련 중에는 훈련 기간 동안 전혀 입을 열지 않는 묵상 기도도 있다는데, 침묵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토마스 칼라일은 “언어는 위대하다. 그러나 침묵은 더욱 위대하다”라고 했는데, 항상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침묵에는 용감한 침묵, 비겁한 침묵, 괴로운 침묵, 그리고 거룩한 침묵 등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꼭 입을 열어 자기의 소신을 밝혀야 할 때도, 후환이 두려워, 손해를 볼까봐, 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꼭 다물고 있다면 비겁한 침묵이라 부르고 싶다. 반면에 본인이 당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동료나 주위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지 않도록 어떤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비밀을 누설치 않는 것은 용감한 침묵이다.
침묵에는 또한 능동적으로 본인이 입을 다무는 것과 주위가 고요하고, 정적이 감도는 상태인 피동적 침묵이 있다. 시편 13편의 기자는 응답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응답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께 의인으로 불리운 욥은 이해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에 이유를 설명 안하고 잠잠한 하나님으로 인해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다. 또한 크리스천 작가로 유명한 엔도 슈샤꾸의 책 ‘침묵’에는 수많은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이 극심한 박해와 순교를 당해도, 세상은 여전히 똑같이 돌아가고, 하나님은 잠잠하시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는 성직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침묵들은 인간이 그 침묵의 의미를 깨닫기 전 까지는 심한 고뇌를 안겨주는 괴로운 침묵이다.
여러 침묵 중 가장 아름다운 침묵은 아무래도 ‘거룩한 침묵’이라 생각된다.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회의 여신도와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는 근거 없는 낭설에 휘말려 고민하다 한 마디 변명 없이 조용히 사직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진상이 밝혀져 다시 모셔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코 쉽지 않은 거룩한 침묵이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가장 참혹한 형벌을 당하신 예수, 이 분이 탄생하기 700여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라고 묘사하고 있다. 과연 ‘거룩한 침묵’의 극치이다. 어떤 목사는 “하나님의 언어는 침묵이며,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침묵은 성화의 본질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나도 이 거룩한 침묵의 맛과 멋을 더 누리며 사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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