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보세요. 내 머리 만져 보세요. 키모(항암치료)가 끝나고 나니까 이렇게 새 머리가 돋아나요. 만져보고 쓸어도 보세요. 얼마나 보드라운가! 얼마나 신가한가! 내가 태어날때 갖고 태어난 머리가 다시 나와요. 검었던 머리는 검게 나오고, 곱슬이었으면 곱슬로 나오고요. 노랑머리로 태어났더라면 금발로 나왔겠지요? 참, 신기하게도 잘 알아서 나오고 있잖아요? 얼마나 기특해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키모 끝나고 나면 순이 씨 머리도 그렇게 다시 나올 거니까요. 하나님의 플랜은 틀림없거든요.” 영이 언니는 암 환자들의 외롭고, 아프고, 지치고, 병들고, 서러운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돕느라 바쁘다. 열심이다.
“언니, 언니는 겁도 나지 않아요? 암이 재발까지 했다면서요? 그래도 그렇게 다른 환자들을 격려해 줄 힘이 나던가요?” 내가 물었다.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어쩌면 그 덕에 암을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난 다 합치면 네 번째 암을 이긴 거야. 그런데 번번이 하나님께서 나를 꼭 써야겠다, 필요로 하셔서 그런다는 생각이 변칠 않았거든. 암을 앓아보지도 않은 사람이 암환자한테 아무리 뭐라 한들 그 말이 먹어들어가겠어? 난 암을 한번이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치렀으니 환자들이 내가 하는 소릴 믿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두 가지 암을 같은 때에 앓는 바람에 의사까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더라. ‘한가지 키모 받기도 힘든데 두 가지 키모를 연거푸 주려니까 영이 씨가 얼마나 힘들까 싶어 정말 가슴 아파. 이걸 피할 수만 있다면…. 영이 씨가 너무 안됐다, 싶어 잠까지 설쳤어,’ 하시는 거야. 오히려 난 하나님께서 날 지켜 주실 거라는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하질 않았지.” 언니는 하하 하며 행복스럽게 환히 웃는다.
“첫 번 암 진단 받았을 때 의사가 나더러 머리카락이 다 빠질 테니까 미리 가발이나 모자를 사 두라고 하시더군. 그래 쇼핑가서 맘에 드는 가발 사 쓰고 패션까지 했지. 이왕이면 즐길 수 있는 대로 즐기자, 하고 말야. 그런데 갑자기 걱정 되는 게 있었어. 난 평생 화장을 잘 하지 않지만, 따라서 눈썹 그려 본 적이 없는데 키모하면 머리만 빠지겠니? 눈썹, 속눈썹도 빠지겠지. 그래서 눈썹 그리는 연필도 사야겠다 생각 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머리카락처럼 빨리 자라는 털은 빠지고 천천히 자라는 털은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눈썹이나 속눈썹 빠질 걱정은 않아도 된다, 고 말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서 눈물을 줄줄 흘린 거야. 내가 우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의사 선생님이 물으셨어. ‘내가 무슨 말을 잘못 했냐, 왜 갑자기 우는 거냐,’ 하시면서.”
“그 말에 왜 우셨어요?” 나도 물었다.
“생각해 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빨리 자라는 털, 느리게 자라는 털을 미리 다 생각하셔서 만드신 것 아냐? 난 털이란 털은 다 같은 줄 알았어. 눈썹 털이 빠지면 연필로 그리면 되겠지만, 속눈썹이 다 빠져 눈으로 들어가면 그걸 어떻게 관리 하겠어? 눈썹 하나 눈에 들어가도 아파 어쩔줄 모르는데. 그래서 의사께 말씀드렸지.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게 깊고 오묘하단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이라고. 의사 말이 갑자기 내가 울어서 당황했는데 그 말 듣고 보니 영이 씨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신까지 눈물이 난다시더라.” 언니가 또 하하 하며 환하게 웃는다.
영이 언니 만큼 삶을 긍정적으로, 낙천적으로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난 틈만 나면 언니를 찾아 졸졸 쫓아다니길 잘한다. 언니 덕 좀 보고 싶어서…. 언니 따라다니면 언니의 그런 인생관이 나에게도 조금은 물들지 않을까 싶은 공짜 바라는 마음에서. 어쩌겠는가? 나야말로 공짜라면 양잿물도 양보하지 않을 타고난 얌체족인 것을….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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