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식을 끝내고 한숨 돌리고 나니 정작 내가 결혼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어깨에 메고 있던 짐 덩어리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이 시원하기도 한 후련함까지……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덩달아 하는 결혼이 아닌, 정말 같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서 조건 따지지 않고 결혼한다는데…… 무조건 박수만 쳐 줄 수도 없었다. 결혼 생활이라는 현실 앞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던 나 자신의 부정적인 경험 때문일까? 이 나이 먹도록 결혼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러나 내 복잡한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은 진행되었고,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 있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격려와 축복 뿐임을 알기에 나자신의 의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삶에서 하나의 마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앞날에 겪게 될지 모를 모든 변수의 파노라마를 미리 펼쳐 보일 수도 없으니…… 지금껏 그래 왔듯이 지켜 보고 기다려 주는 수 밖에.
오래 전 딸을 낳고 쓴 육아일기를 들여다 보니 새삼 그때의 설렘이 다가온다.
‘새로운 해의 새 아침이 밝아왔다. 첫딸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이다. 어제 밤엔 샴페인을 떠트리고 happy new year를 기원하면서 가족 사진도 찍었다. …(중략)… 분만 때의 갑작스럽고 두려운 큰 고통도 다 잊을 만큼 큰 댓가를 치르고 얻은 보람을 느끼며, 동시에 한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 또한 크다. 오늘은 정말 조용하고 평화롭게 저물어 간다. 스물 아홉 살의 엄마가 되어 새해 새날을 맞으며……’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받아서 기뻐하고 애지중지 잘 키워 보려고 힘껏 노력은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부모로서 좋은 모범을 보이지 못해 상처를 많이 주었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세상에 내놓아 스스로 가족을 만들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잘 한 것 보다는 후회 되는 일이 더 많다. 품 안에서 웃음을 주고 큰 기쁨을 주었던 기억,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식 일은 내 맘대로 할 수 없구나 한탄했던 기억, 모든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친구 말마따나 좋아서 하는 고생은 힘이 안 들고 지금은 옛날보다 살기가 나아졌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나이 먹으며 느는 것은 걱정뿐이다. 걱정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걱정만 하는 엄마는 미래를 읽지 못하는 청개구리 엄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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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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