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맥도날드에서 외상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내가 외상으로 뭘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커피를 마시면서 외상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맥도날드는 내가 가끔 들르는 곳이다. 주말 아침 집에서 출발해 그 곳을 반환점으로 해서 운동 삼아 걷기에 적당하다. 그 곳까지 다녀 올 경우 보통 자그마한 베낭에 물 한 병과 빈 커피 보온병을 담아 간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지만 역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반환점에 도착해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는 것이다. 나도 이제 몇 해 전부터는 시니어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는데 따끈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걸으면서 마시는 맛이 보통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도 맥도날드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커피를 사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지갑이 없었다.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항상 커피 값은 챙겼는데 그 날 따라 빈 주머니로 걸었던 것이다. 커피 마시는 것 한 번 쯤 건너뛰어도 되지만 당장 손에 돈이 없어서 그런가 왠지 더욱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맥도날드에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외상 커피 한 잔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보기로 했던 것이다.
외상은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일반 직원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매니저를 찾았다. 바쁘게 일하다 카운터로 다가 온 매니저에게 먼저 내가 그 곳에 종종 오는 고객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창피한 얘기이지만 그 날 중으로 꼭 다시 돌아와 갚을 테니 커피 한 잔 우선 그냥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깜빡하고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얘기 했다. 그랬더니 그 매니저는 나를 한 번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떤 사이즈의 커피를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시니어 커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커피를 받아 고맙다고 인사한 후 보온병에 옮겨 마시면서 집으로 다시 걸어 돌아 왔다. 집으로 오면서 내가 그 매니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만약에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다른 음식까지 같이 달라는 요청이 왔다면 어땠을까, 얼마까지 외상이 가능했을까, 판단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하는 물음들이 이어졌다. 커피 한 잔이었지만 배려를 해 준 매니저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외상을 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학생 때 읽어 보라고 책을 그냥 주셨던 선생님, 밥을 사 준 선배들과 어른들, 그리고 맨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을 때 사무실 집기 구입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이자도 안 받고 꾸어 주신 분. 선거를 치를 때마다 선거 자금을 준 후원자들, 자원 봉사자들, 나에게 한 표를 주기위해 새벽부터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 그리고 교육위원 활동을 하면서 어려울 때에 힘내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사실 외상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외상은 갚아야 하는 빚인데 제대로 갚았나도 생각해 본다. 아직 못 갚은 부분은 어떻게 하든 갚아야 할 것이다.
토요일에 커피를 외상으로 받으면서 약속했던 대로 그 맥도날드에 73 센트의 동전들을 챙겨 들고 갔다. 그런데 내가 너무 늦게 찾아 왔던지 그 매니저가 더 이상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돈을 건네 주려하자 안 받는단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고 그냥 커피 한 잔 줄 수 있는 일이니 그냥 가라고 한다. 절대로 안 받는다고 해서 주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대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그 맥도날드에 찾아 갔다. 그랬더니 전 날의 그 매니저가 일하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아 따로 불러 낼 수가 없어 카운터 쪽에 서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사했다. 나를 기억했다. 동전들을 건넸더니 웃으면서 받았다.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돌아 나오는데 다음에 또 한 잔 외상을 달라고 해 볼까 하는 장난스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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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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