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여자 형사의 ‘성적 수치심’에 대한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성폭력의 구성 요건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가’로 결정된다고 한다. 이 말은 가해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가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이 ‘성적 수치심’이면 성범죄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표현은 성범죄와 관련된 뉴스나 법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수치심(羞恥心)은 사전적인 의미로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며, 수치가 되는 행동을 할 경우에 생기는 마음으로 정의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한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느낄 때 드는 생각이나 감정이 ‘수치스럽다, 부끄럽다’ 로 표현된다. 따라서 수치심은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한 가해자에게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강의 핵심이었다.
이런 내용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느끼는 정서이거나,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었다. 뜻하지 않게, 혹은 갑작스럽게 학대나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그 순간 무서움, 두려움, 걱정, 당황, 혼란 등의 여러가지 기분을 갖게 된다. 이 때 그러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지지 받고 공감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학대나 성폭력을 당했을 것이라 자신도 모르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피해자를 먼저 보호하기 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라며,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 결과, 피해자는 아픈 경험을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며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가지게 된다. 이러한 기분을 학대나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가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가지고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된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혹시 주변에 뜻하지 않게 큰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면, ‘부끄러웠지?’ ‘수치스러웠니?’라는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감정들은 무시된 채, 피해자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내면을 우리의 관점으로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마음을 열었을 때 지지해주며 공감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표현이나 인식으로 인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오히려 소외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그러했듯이 수치심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길 바란다. 피해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큰 아픔을 겪은 후,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억지로 요구 받아 고통 속에 살아오셨던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한 감정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당신을 아프게 한 그들의 잘못이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 분들이 좀 더 당당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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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탁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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