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 급기야 트럼프가 “세상이 본 적이 없는 분노와 불을 맞게 될 것”이라며 북한을 협박했다. 그의 말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말은 예언처럼 말하여진 것을 이루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의 근원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로고스’가 ‘말한다’는 어원에서 나온 것이나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온 세상의 생명 중 유일하게 말을 하는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구분될 뿐 아니라, 인간의 말에는 그 뜻을 이루어내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그 발언 후 관련된 기사들을 읽는 중에, 쉘든 리치맨(Sheldon Richman)이 쓴 ‘트럼프가 말한 분노의 불바다는 북한엔 처음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보다 훨씬 더 많은 네이팜탄이 투하되었다.
베트남전에 비해 북한은 훨씬 많은 인구와 산업화가 이루어진 곳에 네이팜탄이 투하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타 죽어갔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기록을 인용하며 한 미군 병사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불에 타 눈에 뒹굴며 내게 총으로 쏴달라고 빌었다.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네이팜이 피부를 바싹 태워서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며, 마치 감자칩에서 껍질이 뒤집어지듯 피부가 뒤집어졌다.’ 네이팜탄은 베트남전에서 투하되었을 때, 벌거벗은 소녀의 처참한 비명이 들리는 듯한 사진으로 각인된 그 폭탄이다.
1972년 6월 8일, 당시 아홉 살 소녀의 팔에 이 폭탄의 불길이 옮겨붙어 옷을 벗어 던진 채 울부짖으며 달리는 그 장면을 한 사진기자가 포착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한국전에서 그 무시무시한 불폭탄이 미국에 의해 떨어져 지옥과 같은 불바다를 만들었다는 것을 쉘든은 그의 글에서 상기시켰다.
북한사람들은 그때의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자손 대대로 되새기고 있음도 덧붙였다. 남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역사의 이러한 부분은 숨겨진, 선별된 교육을 받아 한국전의 참혹함을 미처 다 알지 못한 채 지나 왔음이 부끄러워졌다.
쉘든의 글에 실린 맥아더 장군의 의회증언록 일부는 더욱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국에서의 전쟁은 한 나라를 거의 모두 파괴했다.
그러한 초토화, 그토록 많은 피와 처참함은 본 적이 없다.’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을 진두한 때는 그의 나이 71세로 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치르고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잔혹함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간 현장을 목격한 후였다. 그런 그가 ‘이전엔 그런 참담함은 본 적이 없다’고 한 한국전인데, 어떻게 그 전쟁은 미국인에게 ‘잊혀진 전쟁’이 되어 미국의 대통령이 세상이 본 적이 없는 분노와 불을 또다시 한국 땅에 불러오겠다고 할 수 있는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엔 화가 치밀어올라 악담을 퍼부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운명인데 화를 참고 말을 뱉지 않아 죽음을 면한 여인이 나온다. 가난한 구두공이 밤 늦게 벌거벗은 한 거지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자 그 아내가 화가 치밀어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거지는 하나님의 명을 어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닫고 돌아오라고 이 땅에 떨어진 천사로, 그가 그 여인을 보니 그녀가 입안에 담은 말을 쏟아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참이었다. 누가 내게 화를 돋우는 상황에서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정작 자신을 죽이게 되는 독살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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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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