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하는 긴 여행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여행길의 우리 가족의 음악 선택은 여러나라의 민요를 돌아가며 듣는 것이다. 언어가 다르니 무슨 내용의 노래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막연하나마 그 나라마다의 역사와 문화가 노래에 묻어나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주로 멜로디의 흐름이나 각 나라 언어 특유의 높낮이가 이루어내는 조화에 귀를 맡기게 된다.
이런 음악을 들을 때는 다른 나라 언어이기에 가사를 한국말에 맞춰보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그중 브라질의 통기타에 맞춰 부르는 민요 가사 중의 몇 마디가 내 귀엔 꼭 ‘누가 뭐래도’로 들린다. 물론 실제의 노래가사와는 전혀 무관하겠지만 이 구절이 나올 때마다 온 가족이 ‘누가 뭐래도’를 맘껏 외친다. 이 말을 외칠 때면 왠지 통쾌해지고 움츠려있던 자신감이 불끈 솟으며 마치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한 듯한 쾌감을 준다.
‘누가 뭐래도’ 다음에는 어떤 행동이나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그러한 행동은 때에 따라 좋게는 ‘정당한 고집’ 이나 ‘뚝심’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나쁘게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의지가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가 뭐라고 하던지 개의치 않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첫번째 경우는 10살쯤 되었을 때였다. 소위 골목 대장들이 내 남동생을 놀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난 4남 1녀로 자라면서 싸움이란 걸 할 필요가 없었다. 오빠들이 항상 하나인 여동생에게 양보 하거나 아니면 내가 오빠들에게 대드는 걸 포기해서 싸움을 모르고 자란 것이다. 그런 내가 몸집 큰 동네 깡패하고 맞서야 했으니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동생을 위한 보호 본능이 앞선지라 울면서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다행히도 울면서 대드는 나를 피해 그들이 가 버려서 동생과 함께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으며 그날 부모님께 과한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고집(?)은 남편과의 결혼이었다. 결혼 전까지 부모 속 썩이는 일 없이 잘 지내온 내가 누가 뭐라고 하던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사람인 키다리 포천 태 씨와 결혼하여 태평양 건너편으로 날아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었다. 하나뿐인 딸을 곁에 두고 살고 싶으신 엄마에겐 얼마나 큰 실망이었는지 그 당시엔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그때의 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최고의 순위였으며 옆의 사람이 감수해야 할 슬픔은 내 몫이 아니라고 여겼다.
결혼 후론 ‘누가 뭐래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점차 무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요구가, 남편의 스케줄이, 남에 대한 의식 - 이 모든 것들이 걸림돌이 되고 나의 취향이나 주장은 점점 아래로, 밑으로 내려놓게 되었다. 어찌 보면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가라앉은 앙금을 휘저어 놓을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남편이 브라질 민요의 노래 구절의 참 의미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주위에 포르투갈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나만의 ‘누가 뭐래도’를 외치는 순간의 기쁨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다음 여행길에서도 그 외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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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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