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면 상담에 관련된 문의 전화를 많이 받게 된다. 보통 자신의 고민을 간단히 소개하며 상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상담 선생님과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본 뒤 약속을 잡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자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분들도 계시다. 대부분 초,중,고등학교 자녀들의 학업, 인간관계, 가족의 고민을 나누며 아이가 상담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시곤 한다.

간혹 18세가 넘은 자녀 문제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분들의 전화 내용 대부분은 자녀를 어떻게든 상담을 받게 해서 문제를 고치고 싶다고 한다. 자녀의 문제를 지켜보며 함께 지내는 것이 괴롭다고 하며,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까 걱정 된다고 한다. 이 분들은 대체로 자녀를 상담소에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면 상담 선생님께서 ‘이 아이를 고쳐 주시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 그럴 때마다 자녀의 문제로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부탁 하실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솔직히 20세가 넘은 자녀를 그들의 동의 없이 상담을 통해 고쳐달라는 부모의 부탁은 (거절하기 정말 힘들어도) 들어줄 수 없다.

왜냐하면 18세가 넘게 되면 상담을 시작하는 것과 끝내는 것을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굳이 법원의 요구가 아니라면 상담을 받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을 대하는 부모의 문제가 더 크다고 믿고 있어, 부모가 먼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담은 상담을 하는 사람과 상담을 받는 사람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기쁨, 슬픔, 혼란 등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매우 연약한 부분이나 싫어하는 부분까지 직면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어렵고 힘들며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상담을 받는 사람의 의지가 없다면 할 수 없다. 물론 상담사의 경험, 지식, 기술 등도 그러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지만, 상담을 받는 사람이 바뀌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변화시킬 동기가 부족한 사람들은 상담 자체가 잘 진행될 수 없다.

20세가 넘은 자식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식의 문제를 그들의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식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말이나 행동이 혹시 자녀의 문제를 더 키운 책임은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왜 그토록 자녀의 문제 때문에 본인이 더 괴로워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스스로 먼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상담을 통해 혹 본인이 먼저 변화가 된다면, 자식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상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달라진 방식으로 인해 자녀뿐만 아니라 가족의 분위기, 인간관계에까지 변할 수 있다.

목불견첨(目不見睫)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은 눈으로 속눈썹을 보지 못하듯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은 본인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으로 보기 쉽다. 다 큰 자녀라면 본인의 일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맞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만 불편해질 뿐이다. 만일 부모가 그런 자녀를 지켜보기 불편하다면, 오히려 그 마음을 가진 부모 자신의 내면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자녀보다 본인이 먼저 상담을 받아보면 어떨까?

<조탁현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