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프리랜서 작가
지난 10월1일, 나는 라스베가스에 있었다. 9시에 시작하여 10시 반에 끝나는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호텔 로비가 소란스럽다 싶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인파에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다 나는 누군가에게 밟히고 걷어 차였다.
도망쳐야 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힘껏 도망쳤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누군가가 외친 ‘총격(shooting)’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고생 끝에 찾아간 지하 대피소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호텔은 모든 출입구를 폐쇄했고, 기나긴 밤이 시작되었다.
두시간쯤 후 경찰은 자살한 용의자 외에 ‘활동 중인’ 총격범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활동을 멈춘’ 공범이 대피소에 쳐들어와 대학살을 벌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다음에 경찰은 ‘공범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공범이 없다는 증거’도 없었다.
58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500여 명을 다치게 만든 그 참극은 내가 대피해 있던 호텔에서 불과 1마일 쯤 떨어진 콘서트장에서 벌어졌다. 나는 범인이 ‘태양의 서커스’ 가 아니라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을 선택한 것에 안도하는 자신에 소름이 끼쳤다.
지난 5일, 텍사스의 한 교회에서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범인을 포함한 27명이 사망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감정이입이 과했는지, 다음 날 친구와 만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안에 초조했다. 너무 긴장해서 등이 땀으로 다 젖었다. 그건 아마도 2012년 7월 콜로라도의 한 극장에서 <다크 나이트>를 보던 12명의 관람객이 희생된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콘서트, 교회, 극장은 이제 갈 수가 없다. 참! 흉악한 총기 난사범들은 학교도 좋아한다! 지난 14일 북가주 작은 시골마을 초등학교에 총질을 하려다 네 사람을 죽이고 끝내 사살당한 그 자도 틀림없이 그런 인간이다.
콜롬바인 고교(1999), 버지니아 공대(2007), 오이코스 신학교(2012) 그리고 샌디 훅(2012)을 생각해 보라.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학교는 너무 무섭다.
나는 전미총기협회, 헌법, 로비, 대통령의 성향 등을 거론하며 복잡한 이야기를 펼칠 만큼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나는 앞으로 상영될 새로운 스타 트렉 시리즈를 극장에서 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남편이 새해 선물로 반년 전에 예매해 둔 케이티 페리 콘서트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구글의 검색창에 ‘베가스 총격 범행동기’를 검색한다.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오늘도 같은 일을 했다. 하지만 동기야 어찌 되었든 범인의 손에는 합법적으로 구입한 수십 정의 총기가 있었음을 안다. 무려 수십 정!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나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총이 하나쯤 필요하다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그런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죽는 날까지 결코 총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적어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생각하며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총을 사지 말아 달라. 악인의 부당한 폭력 앞에 무력해지고 싶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포를 이용해 더 많은 죽음을 팔려는 자들을 기쁘게 하지는 말아 달라. 우리는 그들보다는 나은 인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
이현주 프리랜서 작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