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새털구름 몇 조각을 띄운 파란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청명하다. 늦가을을 딛고 서있는 나무들은 선홍색, 노란색, 주황색으로 물결을 이루면서 녹색의 숲을 이루고 있다. 성질 급한 잎새들은 바람타고 우수수 흩날리며 거리를 예쁘게 장식한다. 내 마음도 가을을 밟으며 낙엽처럼 가버린 녹색의 젊음, 그 아득한 추억에 잠겨든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생각이 다르고 코드가 맞지 않는 남녀가 만나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지 40년이니 인생의 계절에서 보면 가을의 중간쯤에 와있는 것 같다. 남자는 차분하고 자상해서 빈 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급한 게 없어서 여자가 식사를 다 끝내고 나면 한 숟갈 우물거리는 타입이다. 성질 급해 실수하는 여자의 뒤를 수습하다가 화가 나면 남자는 입 다물곤 며칠씩 말이 없다. 열정적인 구석이 있긴 하나 마음 약한 여자는 갑갑해서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고는 구겨진 자존심으로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고, 단순한 남자는 이것저것 따지는 여자의 복잡성에 머리가 아프다.
물같이 흐르는 세월 속에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감사하게 되고 연인에서 평생의 친구로 물드는 동안 인생을 보는 눈도 조금씩 성숙해졌다. 녹록치 않은 현실과 성경 말씀 사이에서 갈등과 깨달음이 오가고, 심오한 내면의 빛으로 서로를 투영하며 보듬고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물처럼 부부의 세월도 흘러갔다.
언젠가 TV에서 낱말을 표현해서 단어를 맞추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자성어로 부부를 ‘천생연분’이라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할머니는 ‘평생웬수’라고 해서 웃었지만 한편 뭔가 가을부부의 측은함이 보이기도 했다. 가슴 두근거리며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랐던 연애시절, 아무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이 원하던 꿈을 향해 도전하던 그 용기는 다 어디로 가고 요즈음의 남자는 텅 비어있는 듯이 힘없는 모습으로 안쓰럽다.
두 남녀는 결혼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쳐 모서리가 닳아가는 아픔도 경험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숨쉬고 있는 서로의 진심을 찾아 내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들면서 대화는 겉돌기 시작하고 줄었지만, 다행히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외로운 인생길이 조금이나마 풍요로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이 언제까지 우리를 부부의 연으로 끌고 갈 지 알 수 없지만 각자의 별들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가장 가까운 친구로, 동반자로 ‘우리의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참 행복 했다’ 고 서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둘이지만 하나인 외로운 인생길에서 불란서 시인이 쓴 “사막을 혼자 걷다가 너무 외로워서 뒤돌아 모래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욱을 바라보았다”는 시를 떠올리며 깊어가는 가을의 외로움을 추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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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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