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날 저녁, 함께 모여 노래와 춤으로 전투를 준비한다. 한 목소리로 때로는 전사의 노래에 맞장구 치고 전사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운다. 거대한 장작불을 둘러싸고 격렬한 춤과 함께 전쟁의 노래를 부르면서, 다음날의 전투를 준비한다.
내일 전투를 맞이하는 것은 인디언 부족의 일 만은 아니다. 알고 보면 삶은 매일 매일이 전투다. 아침마다 세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나 오늘 보내고 받아야 할 물품 목록을 정리하는 가게 점원이나, 전투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디 아침 한 나절 뿐이랴. 삶은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뜻밖의 일들을 준비해 놓고 우리의 대처 능력을 시험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전투 같은 하루를 보내고 쉬는 시간이 와도 피곤한 마음은 좀처럼 편히 쉬어지질 않는다. 바쁜 하루를 보낸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넋 놓고 앉아있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일이면 여전히 벌어질 전투 같은 하루를 맞이하기 전 마음의 불안과 우울함, 스스로에 대한 자책 혹은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분노들을 잠시 꺼버리고 싶어서다. 내일은 또 다른 전투의 시작인데 전사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적고, 그들을 격려하려 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더욱 적다.
가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 누군가나 친한 친구들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서로의 신변잡기를 나누는 가벼운 수다도 좋고 정말 마음에 맺힌 한탄을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하지만 바쁜 일상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마음을 나눌 친구도 좀체 허락하지 않고, 그런 시간이 오래 지나면 우리 마음 속 갖가지 드러내지 못한 감정들은 마음 밑바닥에 검고 진득한 늪처럼 고이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깊은 늪을 지니고 사는 사람도 있다. 지난날 받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풀어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 상처를 입은 것이 너무 오래 전이어서, 혹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이야기를 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상처의 이야기는 비밀이 된다. 풀어낼 수 없는 기억 속에 갇힌 채, 이들은 상처로 뒤틀린 어제 속에 오늘을 산다. 마음의 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신 안에 한 번도 시작하지 못한 긴 이야기가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노래가 있다고도 말한다.
마음 속에 담긴 늪의 깊이야 어떻든, 우리는 모두 일상을 들여다보고 고인 감정을 덜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과 치르는 전투의 시간 어딘가에서 ‘잠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지금 치르는 전투의 향방과 가치를 재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상담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 혹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나 참여하는 특수한 일로 취급한다. 그러기에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모욕으로 받아들이거나 상담을 받는 사람을 흰 눈으로 쳐다본다. 그 순간 사람들은 전쟁의 노래를 부를 필요도, 그것을 듣고 격려해 줄 필요도 무시해 버린다.
우리는 모두 상담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전투의 노래를 부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공간에서 격려 받고 지지받아 마땅하다. 상담은 일상적으로 전투를 맞이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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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상담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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