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페어팩스 카운티의 브래덕 로드를 따라 운전하면서 올리 레인으로 진입 하려는 참이었다. 12월의 해는 짧아 땅거미가 덮였던 도로는 어느덧 어둠으로 변해 질주하는 차들은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하고 있었다. 핸들을 돌리며 좌회전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불에 비친 방향표시 사인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나 이것을 피하려고 급회전을 했다. 순간, 우당탕탕 굉음소리를 내던 내 차는 덜컥덜컥하며 속도를 잃었다. 간신히 차를 굴리듯 천천히 도로 옆 풀밭에 정차 시켜놓고 서둘러 차에서 내려 보니 운전석 앞바퀴 타이어는 처참한 모습으로 옆으로 길게 찢어졌고, 사인판 모서리의 콘크리트 날을 들이 받은 듯 알루미늄 휠마저 엄청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차안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이 한밤중에 차 사고라니! 날씨마저 차가운데 실로 난감한 노릇이다. 사고는 사고라 치더라도 혹 이때 경찰관이 사고현장에 나타나 내 라이선스를 확인하면서 나의 생년월일을 보고 ‘운전 비자격 연로자’로 낙인 찍혀 운전면허를 몰수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나의 AAA 도로상해보험도 갱신을 안해서 어디에다 차를 토잉해야 할지 막막한 노릇이었다. 그뿐이랴 손녀 딸이 뉴욕에서 내려와 외로운 할아버지에게 한턱 낸다고 식당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6시 약속에 15분을 남긴 시점이었다.
망연자실 넋을 잃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우연히 앞을 보니 흰 SUV 차량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환히 비추면서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지 않은가. 경찰차는 아닌 것 같았다. 차는 내 앞에서 정지 하더니 동시에 양쪽 문을 열고 백인남자 둘이 서둘러 뛰어 내려 내게로 다가왔다. 그중 연장자로 보이는 이(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찢어진 타이어를 보더니 나에게 스페어 타이어가 있느냐고 묻는다. 있다고 하자 그는 트렁크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잡다한 짐들을 이리저리 뒤지고 밑바닥에 감춰있는 스페어 타이어를 찾아내어 현장에 옮겨 가는 동안, 그의 아들은 이미 자기 차에서 꺼내온 잭키로 차체를 올리고 있지 않는가. 나는 내 넙적 다리를 꼬집으며 눈앞에 전개되는 이 순간순간들이 제발 꿈이 아니기를 바랐다.
두 부자는 날샌 솜씨로 스페어 타이어로 바꿔치고 헌 타이어를 다시 트렁크에 집어 넣어 주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 늘 해온 것처럼 말끔히 마무리 짓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손을 흔들며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큰 키에 캐주얼한 옷차림 이었으나 상당히 점잖은 신사 같이 보였다.
“엔진 소리 여운을 길게 남기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사라져 가는 그 아버지와 그 아들/ 나는 손을 높이 흔들며 ‘메이 갓 불레스 유’ 라고 크게 외쳤다/ 고된 하루일 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아라 저기 자동차 고장으로 쩔쩔 매는 저 사람 하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눈짓 하였으리라/ 작업을 끝낸 그들에게 얼마나 드릴까요?/ 주저하며 머뭇거리는 나의 제의에/ 천만의 말씀 이라는 듯/ 노오우 라고 길게 답하며 손을 젓던 그 얼굴/ 거듭 이름이나 전화번호라도 하니/ 이번에는 세번이나 노, 노, 노 라며 홀연히 자리를 뜨던 그 모습”
그렇다 그들이 바로 작은 예수였다. 그들이 이곳에 오셔서 진흙땅에 무릎을 꿇고 친히 나의 차를 고쳐 준 작은 예수였다. 만감이 오가는 가운데 이 축복된 나라 미국을 제2의 고향으로 택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손녀와의 약속된 장소로 급히 차를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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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만식 윤동주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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