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는 시골길, 초췌한 노인이 숯을 지고 하염없이 길을 간다. 행색은 짐작이 가나 워낙 추운 겨울에 그것도 홑옷만 입은채 떠나는 행상인지라 지나는 과객마저 마음이 불편해 동무삼아 물었다.
“노인장 그래 숯은 팔아 어디에 쓰시려 합니까?” 노인이 대답한다. “ 보잘 것 없지만 몸 뚱아리에 다 들어가지요 입히고 먹이고…..” 숯으로 때 낀 손톱이며 여름 삼베 그대로의 입성 등 분명 먹고 입는 것 외에는 다른 여력이 만무할 노인의 궁상이 애처로와 과객은 다시 묻는다. “노인장 이렇게 힘들여 살아가면서 혹 바람은 있는지요….” 마치 소원이 있다면 금방이라도 해결해줄 듯 은근하게 물었지만 추위에 입술마저 푸른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숯 파는 늙은이가 무얼 바라 소원하겠습니까? 다만 하늘이 덜 추워 애써 만든 숯을 팔지 못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이를 덜덜거리며 대답하는 노인의 홑겹 삼베가 보기에도 가슴 아팠다.
이는 천년전의 일로 과객인 백거이가 매탄옹이라는 시로 남겼다
賣炭得錢何所營(매탄득전하소영) :노인이여 무엇을 바라 숯을 파느뇨 身上衣裳口中食(신상의상구중식) : 몸에 걸칠 입성과 먹성을 구함이러니 可憐身上衣正單(가련신상의정단) : 그리 말하는 노인 몸에 걸친 것은 고작 홑옷이어 가엾구나! 心憂炭價願天寒(심우탄가원천한): 소원 묻는 말에 그저 노인 답하길, 행여 하늘이 덜 추워 숯값 헐할까 걱정한다오.
지극히 가련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슬픈 싯구다. 빌어먹는 자에게도 지킬게 있고 땅강아지처럼 기어도 먹이고 입힐 몸뚱이가 있다는 것이 새삼 숙연해진다. 생계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어디든 있었던 모양으로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금새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숯 파는 노인의 신산스런 삶을 허무로만 보면 50점이고 삶을 위한 극렬한 대비로 보면 100점이다. 강 저쪽의 것을 치열하게 가늠하다보면 강 이쪽의 일이 환하게 비추어져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는 그걸 갈음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절대 맹수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는 인류가 그들의 공격을 피해 동굴에서 무리지어 살았고 무리지어 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동굴 속의 남을 해석하면서 살아야 했다. 적어도 누가 우호적이고 누가 적대적인가는 알아야했던 까닭으로 그것이 발달하여 인지와 공감능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아직까지도 그 덕택으로 사회라는 비교적 큰 동굴속에서 별 문제없이 무리지어 살고 있는 것이리라.
게다가 선착순 달리기엔 언제나 선두가 있듯 뒤처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행여 밤 사이 자신이 뱉어낸 한숨들이 모여 강가의 자욱한 아침안개가 되었다고 믿으리만큼 모진 삶도, 더러는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기구한 삶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이를 지그시 사려문 계획도 있고 당찬 전술도 있었을 터인데 이제 병들고 늙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고 허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하면 아니 되는 일은 함께 맞는 비처럼 역시 동반과 동반의식에서 우러나오는 애틋함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손에도 잡히지 않는 그 변덕스런 공감능력에 기대어 어쩌면 우리는 무리(類)지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태양에서 세번째에 자리한 푸른 별, 그 지구가 올해도 성가신 공전의 일회전을 마치고 우리는 날렵한 샴페인 잔에 요란한 풍요를 담아 호들갑스런 세모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사냥과 채집으로부터 제외되어 더러 늙음만큼 그늘지고 그늘진 만큼 외로울 수 있는 어떤 무리가 행여 우리 동굴에는 없는지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무리 짓는 습성이 있는 우리로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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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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