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의 소년기를 보낸 일제시대, 열 살 내외의 나이에 맞았던 설날은 어찌 그리 기다려지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한 달 전부터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던 설날이 지금은 날 가는 줄도 모르게 속히 다가오고 또 금방 지나가고 만다.
한국은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의 차량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다.
어린 시절인 그 옛날, 겨울 김장을 담그느라고 석유 등불을 켜놓고 밤새워 가며 깍두기를 써는 엄마와 누나 옆에 앉아서, 설날에 먹을 음식준비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설날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부터는 본격적인 세배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병풍을 둘러쳐 놓은 아랫목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어르신들께 “세배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양손을 방바닥에 대고 딱 엎드려 절을 한다.
어르신들은 나의 숙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밤, 대추, 능금(사과), 배, 때로는 세뱃돈을 주기도 하였다. 어린 세배꾼들은 세배를 하면서 동리를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마을 회관에 모여 누가 많이 받았고 무엇을 받았는가를 서로 비교하곤 하였다.
남보다 조금 받았거나 무엇을 못 받았다 싶으면 그 집을 다시 찾아가서 세배를 두 번 하다가 들키는 일도 있었다.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대고 허리를 굽혀 이마가 방바닥에 닿도록 머리 숙여 절을 하면,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견과나 강정 같은 맛있는 것을 받았던 것이다.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머리를 숙인 자세는 곧 낮아진 자세요,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낮아진 자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받고자 하는 자세요, 하나는 진심으로 어르신에 대한 문안과 존경의 마음으로 하는 경우이다.
히브리어의 ‘ 바라크(Barak) ’라고 하는 단어는 무릎을 꿇다라는 뜻이 있고, ‘부라카 (Buraka)’라는 단어는 축복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어원이 같은 이 단어들은 하나님 앞에 진실한 경배의 마음으로 무릎을 꿇으면 복을 받는다라는 포괄적인 뜻이 된다,
땅위에 사는 동안, 나의 육신을 낳아주신 부모에게 세배도 하려니와 또한 나에게는, 나의 생명이 유래한 나의 본향(本鄕)에 영원한 세배(예배)를 할 걸,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금년 설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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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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