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팔이 부러지면서 주변 근육이 약화되었어요.”
엑스레이 사진을 찬찬히 보던 재활치료 의사는 재활 훈련의 원칙을 알려준다.
“아픔의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지금 내가 재활치료 중인 건지 혹은, 의사가 갑자기 시를 읽는 건지 헷갈려서 귀를 쫑긋했다.
”운동 강도가 1부터 10까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오늘은 운동을 5만큼 했는데, 3시간 뒤에 아프고 뻐근하면 운동의 양을 줄여요. 만약 괜찮으면, 조금 더 해요. 매일 조금씩 운동의 강도를 늘려요. 아픔과 긴장이 나쁜 건 아니에요. 뼈는 압박이 오면 다시 밀도와 근육도 생기기 시작 할 거예요. 운동의 강도는, 결국 신체가 말하는, 아픔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이전에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운동과 얼음찜질을 병행했다면, 이제는 왼팔이 내는 ‘아픔의 소리’가 내 몸의 주치의가 되었다.
불편하기만 했던 통증과 긴장은 회복의 기준점이 되었고, 무엇보다, 아픔을 가깝게 두고 적용할 관점이 생겨 기뻤다.
아픔에 대한 이런 해석은 대학원 과정 중에 과제가 어렵다고 몸부림 칠 때 씨익 웃으며, “아픔이 주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마!” 라며 아리송하게 웃거나, 매일 새벽 헬스장에서 근육의 쫀쫀한 긴장을 즐기며 땀 흘리며 운동하는, 안경 벗은 슈퍼맨 같은 튼튼한 첫 번째 지도 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재활 의사의 진단 이후, 먼저는 학교 수영장에 갔다. 자유형과 평영으로 손의 각도와 압력을 조절하며 접고 돌리고 앞으로 쭉쭉 뻗어 보았다.
뻐근하게 펴지지 않았지만, 버틸 만했다. 혹시, 어디까지 해야 왼팔이 아프다고 소리 지를지 궁금해 여러 바퀴를 돌았다.
지금까지 아픔의 소리는 곧잘 묵살하던 나로서는, 조심스럽지만 신기한 실험이었다.
재활은 남의 말과 의견을 따라 억지로 끌려갈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아픔을 시작으로 회복이라는 목표를 지향할 때, 내가 나와 친하게 아픔을 가깝게 듣고 느끼고, 근육과 조직, 그리고 나의 마음과의 은근한 밀당의 밀도와 강도를 높여갈 때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과정이겠다.
이는 재활 치료에만 적용할 게 아니라, 어딘가 아파서 몸과 마음이 웅크려지는 모든 순간에 적용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디서부터 얽히고설켰는지, 마음의 근육통인지 혹은 골절인지, 가족력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수영장에서와 같이, 펴고 뻗고 돌려가며 실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전거 사고 이후, 아픔은 멍 때리는 명사도 아니고, 젠체하는 형용사도 아니고, 소리를 내고, 방향을 주고, 또 회복의 실마리를 돌돌돌 풀어가게 하는 철저한 동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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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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