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갖고 시작한 대학 2학년 첫 학기 도자기 수업. 긴 머리를 살짝 묶고 멋지게 물레 작업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도 저리 해보리라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물레에 앉기 전에 배우는 판 작업은 흙을 얇게 판으로 밀어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서 붙여 만드는 과정인데 각 면을 붙인 이음새 부분은 자꾸 갈라지고 터지고, 기껏 밀어 만든 판은 가마 안에서 휘어지기 일쑤였다.
또 물레 앞에서 우아해지기 위해서는 피나는 연습이 필요함을 물레 수업 첫날 알았다. 물레는 물레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돌았다. 한 학기 내내 마음대로 만들어지지 않음에 화를 내며 다시는 흙을 만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학기 중간에 선포해버렸다.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과제를 제출하고는 다음 학기부터 나중에 전공을 하게 된 섬유공예 수업을 선택했다.
객기와 성마름으로 가득했던 스무살, 어린 나는 늘 급했고 욕심이 많았으며 언제나 서두르고 마무리는 서툴렀다. 인내와 끈기로 만지고 다듬어야 하는 흙의 성질은 무시한 채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불평하고 포기했었다.
30년 뒤 나는 이렇게 도자기 물레 앞에 다시 앉아있다. 절대 내 길이 아니라 단언하고 포기했던 그 길 위에 다시 서있다. 3년 전 도자기 선생님이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에 커피 한잔 하러 갔다가 보게 된 작은 카푸치노 컵. 이런 컵을 만들어 쓰면 참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선생님이 시작하는 클래스와 타이밍이 딱 맞아서 도자기수업을 새로 시작했다.
시작은 똑같은 판 작업. 30년이 지나 새로 배우는 도자기 수업은 어릴 때의 그 수업시간과는 많이 다르다. 여러 번 반복해 롤러로 밀어서 흙으로 판을 만들고 비닐로 덮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모양대로 잘라 붙이고 또 조금 더 마르기를 기다려 다듬고 마무리를 한다. 대학 때 며칠 걸려 만들던 것을 거의 몇 주에 걸쳐 만들어낸다.
물레도 마찬가지, 내 힘으로 눌러대기만 하던 예전과 달리 힘 조절을 하며 밀고 당긴다. 흙이 밀어낼 때는 내 힘이 들어갈 때까지 살짝 누르며 가만히 기다린다. 급해지는 마음을 달래고 천천히 나아간다.
30년간 좀 더 성숙해진 나는 도자기를 새로 시작하며 기다림을 배운다. 어릴 때의 까칠함을 놓고 인내를 알아간다. 가시 돋친 듯 예민하고 늘 조급하기만 했던 젊은 날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이 좋다. 느긋해진 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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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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