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 전 워싱턴한인회장(사진)이 11일 새벽, 지병으로 89년의 삶을 마감했다.
193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이 전 회장은 4.19혁명이 나던 해인 1960년, 조지타운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주미대사관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열정으로 1967년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가발점(Crown Wigs)을 내며 한국산 가발을 미국에 알린 성공한 한인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한인사회 봉사에 눈을 돌린 이 전 회장은 1973년, 제16대 워싱턴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당시 처음으로 연방의회와 정부에 한인회를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등 한인사회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다.
1976년 다시 18대 회장에 당선돼 DC 커네티컷 애비뉴에 첫 한인회관을 마련했다. 이후 1988년 24대 워싱턴한인회장 선거 후유증으로 인해 북버지니아와 수도권메릴랜드 한인회로 갈라지게 되면서 통합을 위해 이 전 회장이 다시 1990년 25대 회장에 출마해 당선돼 3선 한인회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 전 회장은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의 초석도 놓았다. 1977년 전국 13개 지역 한인회장들이 워싱턴에 모여 미주총연을 결성하며 이 전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각 지역 한인회는 주 정부를 상대하지만 연방정부를 상대할 연합단체가 필요하다”며 미주총연의 역할을 분명히 밝혔었다.
장례일정은 추후 확정될 예정이며 유가족은 부인 그레이스 리 씨와 1남 2녀가 있다.
문의 (703)960-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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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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