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9세-18세였던 안홍균, 강창욱, 백순, 최재원, 최연홍씨 체험담 영문 수록

왼쪽부터 최연홍, 안홍균, 강창욱, 백순, 최재원 박사와 책‘Five Boyhood Recollections of the Korean War, 1950-1953’ 표지.
한국전쟁 발발시 9세-18세였던 안홍균, 강창욱, 백순, 최재원, 최연홍 시인 등 5인의 워싱턴 지성들이 자신들이 직접 겪은 6.25전쟁을 영문으로 기록한 ‘Five Boyhood Recollections of the Korean War, 1950-53.’(다섯 소년의 한국전쟁 회고록, 1950-53.)을 펴냈다.
당시 소년이었던 이들은 지금 모두 80대 전후 은발의 노신사가 되어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거주 중이다.
원고를 편집한 최 시인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한국전쟁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는 끝난다. 이번 책에는 기존의 어느 전쟁사나 문헌에도 없는 소년들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안홍균(당시 18세) 씨는 경기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인민군 치하의 90일 기록을 일기체로 써 내려갔다. 전쟁 상황 전개와 자신의 가족사를 가감 없이 서술했다. 중공군의 반격이 시작될 무렵 한국군 소위로 임관, 최전선을 지키다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도미 후 위스콘신 대학을 거쳐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정신과 전문의인 강창욱 박사(당시 14세)는 부산에서 중학교 학생이었으며 피난정부가 세워지고, 남북한 피난민들이 모여든 부산의 변화를 썼다. 낙동강 전투와 흥남철수에 각각 참전한 두 형이 부상당해 살아 돌아온 후 두 형이 정신적 상처로 힘들어했던 점 등 전쟁의 참상도 기술했다. 또 미국의 남북전쟁과 한국전을 비교하면서 전쟁의 비극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최재원 박사(당시 13세)는 경북 영천에서 대구로 기차 통학하던 중학생으로 전쟁이 일어나자 같은 동네에서 가장 촉망받던 고등학생 선배가 포항 전투에 지원병으로 나가 인민군과 싸우다 죽는 비극적 이야기를 다뤘다. 인민군이 그의 고향에 들어오면서 그의 집이 인민군 포로수용소가 되었던 내용 등도 소개했다.
현재 메릴랜드 락빌에 거주 중인 최 박사는 연세대에서 영문학 전공 후 미국에서 수학, 통계학을 전공했으며 미네소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방질병통제본부 의료통계학자, 조지아 의대 교수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백순 박사(당시 11세)는 서울 교동국민학교 5학년 학생으로 서울이 인민군 치하에 들어가면서 일본 동경 유학생 대표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아버지 백관수 선생의 납북 등을 기술했다. 어린 눈으로 본 가난과 파괴 등 전쟁의 참상을 되새겼다.
최연홍 시인(당시 9세)은 서울 삼광국민학교 3학년 학생으로 한국정부의 고위관리였던 아버지를 체포하러 나온 공산당원들 때문에 후암동 관사를 떠나 숙부가 살던 미아리로 피난, 적 치하에서 90일을 보낸 이야기 등을 썼다. 또 매년 6.25가 다가올 때마다 한국의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에 발표한 시와 산문들도 공개했다.
책 발간은 최 시인의 가까운 벗이자 문우(文友)인 노세웅씨가 후원했다. 저서는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으며 페이퍼백 19달러, 킨들 3.99달러.
문의 yearnh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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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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