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나는 이민정착을 위해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 꽃집에서 플라워 디자이너(Flower Designer)로 일한 적이 있다. 경제가 호시절이었던 그 때에는 파티도 많았고 경제도 잘 돌아가, 부유한 미국사람들은 영화 속의 멋진 테이블 상차림을 장식하고 파티를 많이 했다. 내가 다니던 꽃집도 꽤 유명하여 굵직굵직한 장소에서의 행사를 위한 센터피스(Centre Piece)를 하루에도 몇 개씩 주문 받아 배달하곤 했다.
특히 꽃집 주인은 색감이 뛰어난 나의 감각과 재능을 인정, 일감을 많이 주어서 나는 항상 무척이나 바빴고 희망에 부풀어 열심히 일하였다.
어느 날 꽃집 주인이 나를 데리고 출장 꽃꽂이로 조지 부시 부통령 관저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관저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하느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나는 입구에서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신문과 TV에서만 봤던 그 바바라 부시 여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친절하고 푸근한 인상이었으나, 난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정신이 없었다. 주어진 임무는 관저의 메인 홀 중앙을 장식하는 내 키만한 크기의 플라워 어렌지먼트(FlowerArrangement)로 홀 중앙에 위치해 사방 어디에서고 다 보이는 대형 센터피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센터피스 작품이 거의 완성될 무렵, 나는 한 순간의 방심으로 엄지손가락을 칼에 베이고 말았다. 좀 깊숙이 베었는지 피가 많이 나왔다. 할 수없이 부엌 쪽으로 가서 도움을 청한 후 피를 닦고 소독약을 발라 응급 처치를 했다.
가까스로 센터피스를 완성할 수 있었으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혹시나 짤릴까 두려워 꽃집 주인에게는 말도 못하고 억지로 태연한 척 했다.
그 후 나는 본업인 화가로 되돌아와 활동하기 전까지, 플라워 디자이너로, 또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뛰면서 초창기 이민생활을 보냈다.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남편도 은퇴했고, 아들도 결혼해 손녀가 둘, 그리고 미국 대통령도 몇 번이나 바뀌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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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주/워싱턴 미협 전 회장,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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