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 안길법한 커다란 뭉치를 나에게 건네며 그녀가 말했다.
“저기 이거……”
“아니 이게 뭐예요?”
바다 내음이 풍길 정도로 싱싱한 미역이라는 것을 척 보고 딱 알아봤지만 나는 그녀에게 되물어야 했다. 내가 들은 것이라곤 지칭 대명사 단 두 개였기 때문이다. 저기 그리고 이거.
한국에서 건너온 기장 미역을 건네면서 이렇게 소심한 인사라니! 나는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웠는데 말이다. 그러나 엄청난 것들을 지칭 대명사로 대신해 가려진 수고로움마저 덮어내는 것이 한국식 겸손임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나는 저녁 내내 미역을 들었다 놨다 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미역국을 끓일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러면서 내 생애 가장 맛있었던 미역국을 떠올렸다.
2014년 텍사스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맛본 미역국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일이지만 눈을 감고 그 공간을 떠올리면 1인 산모 회복실 공기를 채워주던 고소한 미역국 향을 아직도 맡을 수 있다.
당시 나는 F1 비자를 가진 Non-Resident Alien신분으로 미국 땅에서 막 출산을 마친 상태였다.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3주씩이나 일찍 태어난 아이와 회복실에 나란히 누워있는데 절로 눈물이 났다. 출산 후 산모에게 햄버거와 콜라를 권하는 문화에 충격을 받았거니와 그 와중에 쫄쫄 굶어서 서러움이 극에 달한 것이다.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때쯤이었다. 일어날 기운이 없어서 대답도 못하고 있었는데 간호사도 의사도 아닌 단발의 검은 머리 여성이 들어왔다. 두 손에는 무거운 슬로우 쿠커가 들려있었다.
“앗, 언니?”
“저기 이거……”
시간이 없어서 바삐 끓인 미역국이라며 맛없더라도 세끼 꼭 챙겨 먹어야 젖이 잘 돈다던 동네 언니. 혹여 내가 몸을 일으킬까봐 아이 얼굴만 한번 보고 나서 퇴원하면 보자며 서둘러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하니 언니가 집에 찾아왔다. 아기 보러 들렸다고 했지만 언니 손엔 반찬가지가 한 가득이었다. ‘언니 너무 고마워서 이걸 다 어떻게 갚아요?’하고 내가 울먹이니 언니가 그랬다. ‘나중에 똑같은 일 생기면 너도 그렇게 해’라고.
미역을 건네고 또 미역국을 끓여다주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그리고 어디로 갈까? 사람에게서 와서 사람에게 가는,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재료가 담겼기에 그때 그 미역국이 그토록 맛있었지 싶다.
<
안미정 / 테이크루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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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자 나를속여 나를 울리는자.. 쌩각지도 안했는데 나를 감동 하게해 나를 울리는 자... 싸람들 참 다양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