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그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를 겸하는 내각책임제 국가인 일본에서 현직 총리의 총재 선거 불출마는 총재 연임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재선 의지를 불태웠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TV 토론이 불을 붙인 고령 리스크로 인해 대선후보 직을 사퇴했다.
기시다 총리의 연임 포기는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이 치명타였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을 계기로 자민당과 통일교의 유착, 아베파를 비롯한 각 파벌의 정치행사를 통한 비자금 형성 등 부도덕한 관행들이 폭로됐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파벌(기시다파)을 해체하고 스캔들에 연루된 각료들을 경질했지만, 지지율은 10~20%대에 그치는 등 민심은 싸늘했다. 지난 4월 중의원 보궐선거와 5월 시즈오카현 지사 선거 등에서 연패를 거듭하자, 다음 선거를 우려한 자민당 의원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브로맨스도 막을 내리는 수순이다. 두 정상은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외교를 앞세워 불안한 내치를 돌파해 왔다. 기시다 총리가 불출마 선언에서 한일관계 정상화를 성과로 꼽은 것도 그래서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국내 반발에도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지만,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는 동안 국내에선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드러난 대일 저자세 외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윤 정부가 자랑해 온 한미일 ‘가치 외교’는 격랑을 맞고 있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윤 정부의 진영 중심 외교는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그간 호흡을 맞춘 바이든도 기시다도 없는 환경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느닷없이 강경파 군 출신을 외교안보라인 전면에 내세우며 보수 진영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 교체를 반복하는 데서 그런 위기감은 보이지 않는다.
<김회경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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