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세 유성전 간호사, 기막힌 운명의 영문 증언록 화제
▶ 북한에서 남한으로 또 베트남으로, 미국으로

올해 출판된 유성전 간호사의 영문 증언록.
- 월남 소녀에서 월남 간호사로
1938년 평안북도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난 유성전 씨는 10세의 나이에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직후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 친구들과 작별도 모른 채 가족들과 함께 북에서 도망한 그는 서울의 인왕산 근처 적산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주택)에 정착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3일 뒤 인공기가 청와대에 걸린 것을 보며 “이렇게 고생해 월남했는데 오자마자 또 전쟁이라니,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전쟁으로 인해 학업은 중단되었고, 21세가 되던 1959년에야 이화여대 간호대학에 응시했다. 당시 간호사를 “하녀처럼 보였다”고 느낄 만큼 편견이 있었지만, 결국 간호는 그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 1963년 이화여대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이듬해 결혼했고 1965년 첫째 딸을 출산했다.
가정형편과 빚 문제로 남편은 1967년 민간 신분으로 먼저 베트남으로 파병되었고, 1968년 유 씨는 두 살배기 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채 민간 메디컬팀으로 남편이 있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유 씨는 “한국에서 간호사 월급이 월 30달러였지만, 베트남에서는 350달러에 거주비 100달러까지 지원됐기 때문에 보다 나은 삶을 생각하며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백마부대 인근 민간 병원에서 근무하며 민간인뿐 아니라 적군인 베트콩 부상자들도 치료했다. 유 씨는 “이념은 서로 다르지만 베트콩 환자를 단지 환자로 취급하는 베트남인들로부터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 미국 이민과 간호사의 삶
1971년, 유 씨는 여섯 살 된 첫 딸과 남편과 함께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당시 둘째 딸은 겨우 18개월이었지만,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시어머니에게 맡긴 채 미국행을 감행했다.
워싱턴 DC에 도착한 유 씨는 프라비던스 병원에 간호대 졸업 자격으로 취업했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해 “질식할 것처럼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하루 4시간도 채 자지 못하며 공부한 끝에 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했고 이후 방문간호사(Home Visiting Nurse)로 일하며 지역사회에 헌신했다.
결국 그는 한국전쟁 당시 10대의 소녀였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민간 간호사였으며, 이후 미국에서는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1971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43년간 간호사로 활동하며 살았다.
이 책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도전한 한 한인 여성의 증언이자 한 세대의 역사다.
이 책은 아마존 닷 컴(www.amazon.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의 peggy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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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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