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왜 우린 이런 작품을 못 만드나’ 하는 푸념이 나온다. 한국 소재로 미국 회사만 돈을 벌고 있는데 넋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들린다. 정작 이들은 예수의 생애를 바탕으로 제작해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국산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인들이 그만한 작품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못 만드는 건 아닐 것이다.
■ 영화는 창작자의 능력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K팝 걸그룹이 악귀를 막아 세상을 지킨다’는 허황된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나선 무명의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에게 과감하게 메가폰을 쥐어주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전 세계 주요 영화제의 주목을 끌던 한국 영화계엔 이제 그런 시스템이 없다. 무엇보다 강 감독처럼 재능 있는 인재가 7, 8년을 한 작품에 매달려 완성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기반이 없다.
■ 미국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창작자의 기본 권리인 저작권 유무다. 국내에선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해도, 해외 수십 국가에 팔려도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 후진적인 저작권법이 제작자에게 모든 권리를 몰아줬기 때문이다. 모든 부와 영광은 배우와 제작자에게 돌아간다. 재능을 쏟아부어 성공해도 돈을 벌 수 없다면 어떤 인재가 영화계에 뛰어들려 할까.
■ 한국 영화계는 수많은 영화 창작자를 ‘열정페이’로 착취하는 시스템으로 성장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이런 시스템으로 제2의 박찬욱과 봉준호를 꿈꾸기 어렵다.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하고 영화관에 관람료 인하를 요구한다고 고장난 시스템이 수리되진 않는다.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저작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화예술 창작자를 지원하겠다는 정치계의 빈말 책임이 크다.
<고경석 /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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