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로수 아래로 금빛 잎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햇살은 부드럽게 기울고, 잎은 발 끝에 닿을 때 마다 사스락 사스락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레오 버스카글리아’ (Leo. F Buscaglia) 의 ‘나뭇잎 프레디’(The fall Freddy the leaf) 의 한 장면을 기억나게 한다.
프레디는 봄에 태어난 아주 작은 나뭇잎이다. 봄바람 속에 태어나 햇살을 받으며 자라난다. 여름이 오자 잎사귀들은 푸르러 무성해지고 프레디는 삶의 풍요로움을 배운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오자 프레디는 점점 색깔이 변해 간다. 주변의 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프레디는 친구 대니얼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떨어져야 하는 거야?” “이것은 자연의 섭리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모두 삶의 일부야” 대니얼이 대답했다. 프레디는 여전히 두려웠다. 눈이 오고 겨울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프레디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끝났음을 느낀다. “이제는 괜찮아” 마음 속으로 말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길로 떨어져 내린다.
잎이 봄에 태어나서 자라나는 것이 곧 존재의 이유라고 믿었다. 그러나 계절이 낯선 색으로 변하고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끝이라고 속삭인다. 우리는 왜 태어나고, 왜 가야 하는지, 왜 반드시 떠나야 하는지는 인간의 질문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떨어져야 하는 거야?” 하는 질문은 내 마음에도 머물던 두려움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전히 꿈을 꾸며 목표를 향해 걸어 가는 일 사이에서, 예전보다 느려진 손 끝, 더디게 반응하는 몸, 집중력이 떨어지고, 아주 가끔 “뭐 하려고 했었지?” 하고 머뭇할 때 “이것이 자연의 섭리야. 네가 흙이 되어야 새 잎이 자랄 수 있단다.” 는 대니얼의 말을 기억한다. 숲은 붉게 물들어 가고 공기는 차가워진다. 햇살도 차츰 기력을 잃어간다. 프레디의 “괜찮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난 후의 평화를 의미한다. 어느 사이에 내 마음의 두려움도 바람결에 흩어졌다. 프레디는 이별도 결국 다음 생명을 위한 ‘쉼표’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잎이 떠나가도 나무는 여전히 그대로 서있다. 프레디의 떨어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의 일부로 다시 오는 것 임을 깨닫게 한다. 떨어짐도 변화도 모두 다음 생명을 위한 자연의 과정이다. 슬픈 일이 아니다.
문득 나 자신을 생각해본다. 가르치는 일은 배워가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선생이라 불리지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작은 잎새 프레디다. 가끔 프레디의 두려움은 나의 것이 된다. “나는 이제 어떤 잎이 될까” 나의 일상은 결국 나의 경험을 흙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 흙 위에서 누군가 새 잎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그 또한 내 삶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 햇살이 내리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볼을 스친다. 그 것은 프레디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한 잎, 또 한 잎, 떨어지는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히며 반짝인다. 그 것은 마치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발끝에 날아온 낙엽 한 장이 프레디의 미소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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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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