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주로 물 흐르듯 유유히 흐르지만, 때로는 댐이 터지듯 격류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격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팬데믹이라는 생물학적 재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충돌, 그리고 AI 혁명이라는 기술적 특이점이 동시다발적으로 인류를 덮쳤다. 이 ‘세 개의 사변적 역사'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혀서 기존의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우선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믿어왔던 ‘안정된 세계'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증명하듯 미국과 유럽은 직격탄을 맞았다. 팬데믹으로 풀린 유동성 위에 전쟁이 기름을 부으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글로벌 공급망은 붕괴했다.
에너지를 무기로 삼은 러시아 앞에서 유럽은 추운 겨울을 나며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물론 나토(NATO)의 결속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화라는 긍정적 부산물도 있었지만, 세계는 더 이상 효율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는 '안보'와 '자국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이고 파괴적인 변화는 소리 없이 다가온 ‘AI 혁명'이다. 전쟁과 전염병이 우리의 ‘생활비'를 공격했다면, AI는 우리의 ‘밥벌이' 그 자체를 위협한다. 단순히 기존 데이터를 분류하거나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텍스트, 그림, 오디오, 비디오등 새롭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수 있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노동 시장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과거 신입 사원들이 도제식으로 배우던 자료 조사, 초안 작성, 코딩 기초 등의 업무는 이제 AI가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낸다. 기업은 더 이상 신입을 키우려 하지 않는다. '경력직 같은 신입'을 원하거나, 아예 AI로 대체해 버린다.
이 지점에서 우리 청년 세대의 비극이 시작된다. 대학생들이 겪는 우울과 무기력은 단순히 취업이 안 되어서 부리는 투정이 아니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오는 실존적 공포다. 4년 내내 학점을 관리하고 인턴십과 자격증으로 쌓아올린 '스펙'이 AI 앞에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허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 전공이 5년 뒤에도 필요할까?"라는 질문 앞에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니트(NEET)족이 되거나, 무기력 속에 빠져든다.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들은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첫째, '정답 찾기'에서 '질문 던지기'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AI는 정답을 찾는 데 있어서 인간을 압도한다. 인간이 설 자리는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증하고, AI에게 무엇을 시킬지 ‘질문(프롬프트)'을 설계하며, 그 결과를 인간의 맥락에 맞게 조율하는 영역이다. 암기 위주의 학습은 이제 무의미하다.
둘째, ‘스펙'보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최고의 무기다. 앞으로의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다. 직업은 수시로 바뀌고, 실패는 일상이 될 것이다.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마음의 근육이 그 어떤 스팩보다 훨씬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 특히 부모들의 통렬한 반성과 변화가 요구된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성공했던 방식, 즉 “좋은 대학 가서 대기업 가라"는 낡은 지도를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 지도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 지금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관리자가 아니라 ‘베이스캠프'다. 거친 세상에서 상처 입고 돌아온 자녀가 언제든 쉬었다 갈 수 있는 안전한 항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다", “실패해도 네 존재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적인 지지만이 아이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세 개의 파도가 겹쳐오는 지금, 우리는 두려워만 할 시간이 없다. 파도를 막을 수 없다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기술의 핵심은 AI를 도구로 부리는 지혜, 그리고 어떤 파도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인간성이다. 이것이 이 혼란한 시대를 건너는 유일한 생존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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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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