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스스로 만들고 다듬어온 역법과 또한 스스로 개발해온 컴퓨터가 결합하는 지점에서 Y2K 라는 밀레니엄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그것 또한 인간이 스스로 대비해서 막아낼 수 있었다. 애초에 연도를 네 자리 숫자로 표기하지 않았던 실수, 또는 준비 부족은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것이므로 역시 인간 스스로 그 문제점을 찾아내어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그러나 Y2K 문제도 무사히 넘긴 지금, 인간은 과연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온갖 미디어에서 디지털에 대한 당론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인간은 그 장미빛 꿈속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보통신 주식을 중심으로 코스닥 시장의 열기와 더불어 디지털이 곧바로 경제와 맞물리면서 실체 없는 거품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의 약진이 곳곳에서 집중 조명되는 가운데 기성세대들은 거기에서 도태 될까봐 남몰래 한숨을 쉬면서 긴장한다. 과거에는 영어를 모르면 취직과 승진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Y2K 대책이 과잉 대응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어린아이들부터 시작에서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만능주의에 빠져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지털에 대한 이러한 호들갑도 새 천년에 대한 기대나 Y2K에 대한 우려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과장된 면이 많고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디지털은 어떤 유행도 더욱이 장밋빛 꿈도 아니다. 냉정한 시선으로 준비해야 할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더욱 더 중심을 잡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째든 분명한 것은 디지털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 그리고 지구촌은 머지않아 디지털로 통일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디지털 시대에 시간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는 바로 그 시간을 활용할 우리 자신이다. 아무리 시간 개념이 통일되고 그러한 절대시간에 지배 당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생활 환경과 생체리듬에 따라 저마다 시간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인지 그 꿈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 깜빡 할 사이에 무언가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대단히 의미 심장해 보이는 서기 2001년도 단기로는 4334년이라는 평범한 한 해일 뿐이다. 모든 것은 그저 사람들이 정해 놓은 약속일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활용하는 인간이 더욱 중요한 것처럼…
모든 것의 주인과 주체는 인간이라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잊어버리면 곧바로 지식과 정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중심을 다시 한 번 주시해 보자. 그리고 한 번쯤 이 엄청난 속도의 시대를 거슬러 의연한 자세로 잠시 휴식과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자.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변화 무쌍한 디지털의 물결에, 또한 정신을 차리기 힘든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서 헤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또 한 해가 저물기에 새로운 한 해가 우리들 앞에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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