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9월9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연방하원 법사위원회에 섹스스캔들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움직임에 가속이 붙기시작했다.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와 클린턴의 대배심 증언 비디오테이프의 전면공개를 결의한 하원은 법사위를 통해 자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대통령의 탄핵을 염두에 둔 수순밟기였다.
1998년 12월19일, 연방하원은 13시간반에 걸린 난상토론 끝에 연방대배심에서의 위증과 사법방해죄로 대통령을 탄핵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클린턴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로 탄핵재판정에 서게 됐다. 그의 유일한 ‘선배’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이었다. 존슨은 1868년 상원탄핵재판에 회부됐지만 투표로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 탄핵재판을 받은 것은 클린턴이 처음이었다.
역사적인 탄핵재판은 해가 바뀐 99년 1월7일부터 연방상원에서 시작됐다. 담당판사는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이었고 하원의원들이 검사, 상원의원들이 배심원 역할을 맡았다. 재판은 정확히 한달만인 2월8일, 클린턴 변호인단의 최후진술로 막을 내렸고 바로 다음날부터 배심원단인 상원의원들의 비공개 평결심리가 시작됐다.
99년 2월12일, 배심원단은 클린턴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클린턴은 "의회와 미국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준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즉석에서 작성, 발표했다.
클린턴은 탄핵의 올가미에서 벗어났지만 도덕적 권위상실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뤄야 했다. 백악관의 위신이 추락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대외 이미지도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능한 대통령중 한명이었으나 섹스스캔들과 탄핵재판을 거치면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정치 지도자에서 ‘정치 기능인’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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