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 AI 이야기다. 챗GPT가 나온지 불과 3년 반인데 생성형, 범용, 에이전틱 AI 등 개념조차 헷갈리는 인공지능 도구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어서 앞으로 어떤 세상이 찾아올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아날로그 인간이다. 생체리듬이 해와 달, 계절에 맞춰져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기계의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느린 삶에 대한 향수와 갈망이 갈수록 깊어지는 듯, 디지털세대의 젊은이들이 점점 더 아날로그에 빠져드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여러 자료와 통계들을 보면 미국에서 독립서점의 숫자가 늘고 있고, LP레코드와 VHS의 인기가 상승 중이며, 교회를 찾는 청년들이 많아졌고, 학교들은 디지털기기 사용을 제한하고 종이숙제로 회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서점협회(ABA)에 따르면 2025년에 422개의 새로운 서점이 문을 열었는데, 이는 2024년보다 31% 증가한 것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형성된 이런 서점들은 거대기업 아마존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한편, 다양한 북클럽이나 게임 혹은 문화공방을 운영하면서 아날로그적 연결성을 찾고 있다.
바이닐 레코드는 이제 단순한 복고취미 수준을 넘어서 꽤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CD의 등장으로 급격히 쇠락했던 LP레코드는 19년 연속 판매가 증가해 2025년에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7년 99만장에서 2015년 1,200만장, 2020년 2,754만 장, 그리고 작년에는 4,850만 장이나 팔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음반사들은 과거의 명반을 재발매하고 있으며, 가수들도 새 음반을 낼 때 LP로도 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VHS는 1976년 일본에서 발명되고 출시된 지 올해 50주년, 2006년 마지막 VHS 테이프가 나온 지 꼭 20년이 되었다. 한때 9,000여개의 체인을 거느렸던 비디오대여점 ‘블록버스터’는 현재 오리건 주에 단 한 곳이 관광지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VHS를 사 모으고, 수천개를 소장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테이프헤드’(tapeheads)라 불리는 이들은 마치 종교적 의식처럼 오래된 영화를 수집하고 VCR을 통해 감상하면서, 정기적으로 모임과 컨벤션을 열어 사고팔고 교환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이달 초 월스트릿저널은 뉴욕 맨해튼의 성당들이 Z세대 청년들로 붐비고 있다고 보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텅 비었던 일요일 오후 미사가 이제 만석이고, 늦게 도착한 신자들은 접이식 의자나 발코니계단 또는 벽에 기대 미사를 참관할 정도라는 것이다.
2025 갤럽조사는 18~29세 남성의 종교 활동 참여가 증가했고, “종교가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도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신앙을 갖게 되었다기보다는, 팬데믹 이후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유대감을 찾는 공간, 즉 교회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그렇다해도 청년들이 AI시대에 삶의 의미와 소속감을 교회에서 찾는다는 사실은 긍정적 트렌드로 읽힌다.
한편 지난달 LA통합교육구는 교실에서 스크린 사용 시간을 대폭 축소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킨더와 1학년생들은 컴퓨터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고, 2학년부터는 사용시간이 제한된다. 이것은 교내 아이패드 지급과 활용을 권장하고 확대해 왔던 수년간의 정책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조치로, 과도한 스크린 노출이 학업 및 신체적, 정서적 해악을 부른다는 전문가들과 학부모들의 지적에 따른 대응이다. LAUSD는 작년 2월부터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금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아이패드, 집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숙제도 읽기도 온라인으로 하면서 직접 읽고 쓰고 외우고 계산하며 배우는 과정을 잃어버리고 있다. 극단적인 한 예로 노르웨이는 2016년, 5세 이상의 모든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노르웨이의 젊은 세대는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 타임스지는 “인구 560만 명 노르웨이에서 약 50만 명이 문자 메시지나 간단한 지시문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학교들이 필기, 토론, 암기, 종이숙제 같은 아날로그 학습으로 회귀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필수적 조치다.
사람들이 종이책을 읽고, 손 글씨 편지를 쓰고, 화질 나쁜 VHS테이프로 영화를 보고,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려 지직지직 소리와 함께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라, 디지털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빠르고 편리하고 완벽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겪을 수 없는 느리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과정이 우리에게 살아있음과 여유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갈수록 더 디지털로 변해가겠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디지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에게는 아날로그의 물성, 만남과 만짐이 필요하다. 천천히 하는 것이 우리를 돕는다. 몸도 돕고 마음도 돕고 영혼을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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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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