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독립운동의 태동지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덴버는 하와이, 멕시코등과 함께 초기 이민자들의 3대 이주 루트로 간주되고 있다.
최초의 루트는 1903년 1월 ‘사탕수수밭 일꾼’ 102명이 도착해 자리를 잡은 하와이.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인천항)을 떠나 약 3주만인 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항에 첫 발을 내렸다. 이 날은 바로 미주 이민역사 100주년 기념일이 됐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약 3년동안 모두 65척의 이민선을 통해 7,226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곧이어 열린 것이 멕시코 루트. 1905년 3월6일 남자 802명, 여자 231명등 1,033명을 태운 배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향해 출발했다. 이들은 멕시코 도착직후 메리다 지방에 있는 24개의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배치된 뒤 4년여에 걸쳐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속에서 비참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각자 계약기간이 끝난 노동자들은 귀국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게 되며 이중 일부는 1921년 쿠바의 하바나에 까지 흘러들어갔다.
이같은 멕시코 노예이민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미국에 온 박희병 선생과 그의 조카 박용만 선생은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덴버에 정착, 독립운동의 산실로서뿐만 아니라 네브라스카, 유타, 캔사스, 와이오밍주로 뻗어가는 중서부 취업이민의 중간역할을 맡게된다. 당시 덴버에는 애국지사와 광부등 취업자들을 합쳐 최소 수십명, 최고 100여명의 한인들이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10년 프리메로 탄광매몰사고 이후 그 규모가 시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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