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독교인 본 회퍼는 히틀러 독재체제에 항거하다 투옥되어 39세의 나이로 교수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의 삶을 통해 이른바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게 됐다.
종교인들에게서 성숙치 못한 이기주의를 체험한 반면 비종교인들에게서 오히려 기독교적 친밀감을 느끼면서 비종교적 기독교를 주장하게 됐다.
사실 그동안 종교적 기독교는 방대한 조직의 세력으로 인류를 속박하며 인간을 어리석은 종으로 길들여 왔다.
예수는 이런 속박의 종교와는 무관했으며 오히려 인류를 종교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려다 십자가에서 희생된 역사적 인물이었다.
종교는 힘의 세력이 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왔다. 이데올로기는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노예화 시키는 진실 왜곡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속성을 지닌다.
지구가 둥글고 돌기에 움직인다고 말한 진리의 증언자들을 불태워 죽인 것이 바로 종교세력의 힘의 논리였던 것이다.
기독교가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라면 종교세력은 ‘성직자’의 힘을 위한 것이다.
토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 형제’에 등장하는 종교재판소장 편에서 기독교와 종교세력 사이의 상반된 관계를 잘 읽을 수 있다.
‘성직자’의 명령에 의해 백여명의 이른바 이단자들이 불태워 죽은 다음날 ‘예수’가 나타난다.
성직자는 많은 군중들 앞에서 예수를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힘을 과시한다. 이 성직자는 예수를 이단이라며 자기들의 종교행위를 방해하려는 예수를 불태우겠노라 폭언한다.
그러나 예수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종교가 떠드는 힘의 세력이라면 기독교는 조용한 신앙의 내용이다. 기독교가 남모르게 기도하며 금식하고 오른손이 왼손 모르게 선행하라고 가르친다면 종교는 사람을 모아놓고 기도와 금식을 광고하며 왼손에 알리고 오른손이 일을 벌리라고 독촉한다.
오늘도 종교 이데올로기의 병사들은 그들의 힘을 위해 신문, 라디오, TV 등을 통해 목청을 높인다.
한국 불교도 종교화 되면서 무아(無我)의 실천이 아니라 유아(有我)의 과시를 보여준다. 산 속에서 큰스님 행세 하다 요란한 장례식 치루고 사리 수나 세다 수억의 기념비나 세우는 것이 불교의 내용은 아닐 것이다.
공기(空氣)를 생각해 본다. 공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말없는 존재이지만 없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못 산다. 우리가 모른 척 한다고, 또 찬양과 공양을 안 들여도 삐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머문다. 그야말로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예수의 재림과 미륵세계를 기다린다는 것은 종교적 이야기이지 십자가 정신과 불심(佛心)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는 내용일 것이다.
요란한 연기같은 종교세력이 아니라 신선한 공기와 같은 기독교와 불교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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