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전화 엄청 받는다. 전화 중엔 수감중인 그 친구(영화 속 준석)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 얘기 때문에 이래저래 피해를 봤다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나는 그런다. 영화를 한번 봐라. 그러고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미안하다."
"나도 그렇다. 친구들이 날 자랑하려고 회사로 찾아 오란다. 그래서 밖에서 만나면 되지 하면, 그래도 사무실로 오란다. 내 안간다. 진짜 뻘쭘(어색)하다 아이가."
배우와 감독의 대화로는 이상하다. ‘친구’의 감독 곽경택(35)과 영화 속의 곽경택인 상택 역의 서태화(34)는 오랜 친구다. 의대를 다니다 영화공부를 하겠다고 미국에 간 곽 감독은 뉴욕주립대, 성악 전공이었던 서태화는 맨해튼 음대에 다녔다. 1992년 곽 감독의 부인이 출산하러 서울에 간 사이 음식을 해온 선배를 따라 서태화가 곽 감독의 집에 들렀다.
그 후 둘은 5분 거리인 서로의 집에 놀러 다니며 친구가 됐다. 서태화는 곽 감독의 대학졸업작품 ‘영창 이야기’ 에 출연했고, 96년 귀국한 곽 감독보다 6개월 늦게 들어와 ‘억수탕’ 에서 코믹한 건달 역할로 배우가 됐다. ‘친구’의 성공에 어리둥절한 두 친구가 만났다.
곽경택- 졸업작 ‘영창 이야기’ 찍고 나니까 사람들이 진짜 바보를 데려다 찍은 줄 알더라. 그땐 정말 잘했다. 근데 영화배우 하기로 마음 먹은게 언제고.
서태화- ‘억수탕’ 끝나고다. 영화가 관객은 별로 안들었어도 청룡상 후보에 올랐다 아이가.
곽-기억난다. 주최측으로부터 6번이나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상이라도 받을 줄 알고 갔다가 잘 나가는 최진실 신은경 이런 배우들 사진 찍는데 연신 자리만 피해주었지.
서-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억수탕’ 으로 후보에 오르지 않았나. 관객은 적었어도 비평은 괜찮았다. 그런데 ‘닥터 K’ 실패 후엔 진짜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곽-그랬다. 둘 다 힘들었다. 나는 네가 소모품처럼 영화에 출연하는데 속상했다. 미국에 있던 4, 5년 만큼 우리가 여기서 자리잡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자.
서-마지막 장면 촬영할 때 고생한거 기억나나. 내가 준석(유오성)이 보다 먼저 촬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카메라 위치 바꾸는데 시간 걸린다면서 안 했잖아. 감정이 다 소진되서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눈물도 안나더라.
곽-그 상황에선 나도 돌아버리겠더라. 그게 클라이맥스인데. 네가 "우짜노" 하길래 나도 "때려 쳐야지" 했다. 그래도 내 입장에선 준석이 쪽에 비중을 더 두었어야 했다.
이제서야 말인데 고생했다. 인정한다
서-나 사실 영화 찍을 때 우리가 친구라서 부담스러웠다. 다른 감독과 하면 내 역만 잘하면 되는데, 공연히 이일 저일 신경이 많이 가더라.
곽-극중의 네가 현실의 나라는 생각 때문에 잔소리 많이 했다.
서-그 친구한테는 연락했나.
곽-감옥에서 신문 다 보고 스크랩 해놨다 카더라. 내가 대입시험보고 집에서 가출했을 때 "니는 그럴 아가 아이다" 면서 새벽에 택시를 태워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마약중독에 빠졌을 때 내가 벗어주고 간 점퍼가 두고두고 고마웠다 카더라.
서-친구는 그래서 ‘고향 같은 존재’ 인 거 같다. 자라고 태어나 좋은 일 나쁜 일 다 겪은 그런 고향, 그래서 꼭 부모가 안계시더라도 찾고 싶은.
곽-사전에 나온 뜻풀이가 딱 맞다.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 ‘오래’가 중요한 거 같다.
기쁨과 미움이 교차하는 그 시간의 함정을 통과해야 진짜 친구가 되는 거다.
서-맞는 말이다. 근데 너 ‘영창 이야기’ 찍을 때 개런티 대신 머리 삭발한 이발료는 주기로 했던 거 아냐. 왜 아직까지 안주냐.
곽-..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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