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국에서 친구가 찾아왔다.
지난 3월부터 이메일로 “방문해도 괜찮으냐?” “한국 호텔을 잡아달라” 등 이런저런 얘기가 왔다갔다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계산하면 45년간의 친구가 된다.
양쪽 집의 아이들이 2주 정도씩 교환 방문해 지낸 적도 있었다. 한국 떠나온 지 20여년만에 이 친구는 나를 3번째 방문하는 길이다. 비즈니스 여행이 아니고 조용히 여가를 보내기 위해 오는 그의 여행 계획에는 ‘골프입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간 한국에서 실내연습장에서만 몇달간 연습을 했는데 필드에서의 입문을 내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소위 말해 ‘머리를 얹는’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내 실력을 잘 아는 동료 골퍼들은 웃겠지만 나는 기꺼이 이 제의에 응했다. 열흘간을 우리 집에 머물며 일곱번을 필드에 나갔다. 내 조그만 생업을 아내에게 맡기며 기본적인 골프 에티켓과 규칙들을 일러주며 모처럼 내 일상생활의 아웃사이더가 되어 보았다.
정신 없이 앞만 바라보며 살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내 현주소를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되었다.
내 생명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한달 밖에 아니 오늘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처럼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가슴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고 나를 가슴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다. 삶이 이어지는 이승에서 어느 누구와도 미움의 잔재를 남기고 싶지 않다.
자식이 짝을 찾아 곧 가정을 이룰 나이가 된 세월,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많은 그런 시점에 서면 조금은 지혜의 눈이 떠지는 것일까?
집에 불이 나 연기가 꽉 찬 가운데에서 나올 길을 찾아 당황하며 헤매는 사람을 상상해 보라.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연기 때문에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심한 불길과 연기 때문에 누군가가 들어가서 인도해 나올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건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한자어에 용심이라는 단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다. 마음을 잘못 써서 남을 시기, 질투 혹은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 속, 연기 속에 갇힌 사람으로 만드는 꼴이다. 스스로를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다. 한번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속에 있던 양심이라는 작은 목소리가 즉시 불을 지르고 연기를 뿜어 지옥을 만든다. 이 작은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캐나다로 떠난 친구에게서 다시 이메일이 왔다. 그 곳 형님과 조카들과 같이 멋있는 9홀을 돌며 스코어 60을 쳤다고 한다. 초보로서는 훌륭하다는 칭찬도 받고 파 3에서 모처럼 파를 잡아 ‘이너’를 해서 다음 홀에서 제일 먼저 치기도 했다며 성공적인 골프 입문에의 공을 내게 돌리기도 했다.
너무 나에게 집착하고 나만을 생각하면 이기심 때문에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내 아내, 내 자식 또 나의 무엇, 무엇 그 ‘나’란 정말로 무엇인가. 태초로부터 영원까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절대 시간 속에서 인간이 향유하는 한백년은 찰나의 순간이 아닌가.
꿈 같고 아침이슬 같고 여름 하늘 구름 같이 왔다가 사라지는 인생사, 나에게서 해방되고 싶다. 우리들의 나머지 생애에서 이 싱그러운 계절을 몇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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