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테러리즘과의 전쟁 덕분에 미국이 벌이고 있는 또 하나의 힘겨운 싸움-마약과의 전쟁에 전혀 뜻하지 않았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헤로인과 오피움이 곧 파키스탄으로 물밀 듯 유입돼 곧 서구로 밀려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헤로인 도매 값은 떨어지고 있고 지난 1년간 마약 재배를 거른 아프간 농부들은 겨울철 양귀비 경작을 위해 밭갈이에 한창이다. 게다가 미국과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대적할 부족 지도자를 찾아내기 원하나 그 후보 중에는 몇십년 동안 마약 장사를 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파키스탄의 케타의 큰 병원 정신과 과장이자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지역 마약중독 치료센터 원장인 압둘 말리크는 "잠깐 일이 좀 잘 되어가려나 했더니 전쟁과 함께 상황이 파키스탄이나 서구제국에 더 나빠졌다. 마약 거래인들만 이익을 챙긴다"고 안타까워했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이용할 가능성도 크다.

유엔의 마약통제 프로그램 대표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일하고 있는 버나드 프라이는 헤로인 거래가 다시 부활하면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경고한다. "이번 전쟁 전까지 오사마 빈 라덴 진영엔 자금이 충분했습니다. 이제 돈줄이 모두 동결되었으니 그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기존 네트웍을 급히 가동해서 마약을 거래할 수밖에요."
워싱턴의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도 아프간의 마약 거래 부활 가능성은 걱정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탈레반 정권의 자금줄이자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을 지탱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아프가니스탄의 오피움 생산량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아 1999년에는 전 세계 공급량의 4분의3 이상에 달했을 정도다. 그러다 지난해에 탈레반 정권이 양귀비 재배를 금지시켰고 3년째 한발이 계속되면서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에 일부 분석가들은 낙관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9월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 며칠 후부터 그동안 아프간에 저장되어 있던 오피움과 헤로인이 국경지역을 통해 파키스탄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마약단속 및 거래업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소규모 상인들은 케타와 카라아치의 시장에서 팔고 있는데 현재 세계 헤로인 거래 중심지 중 하나인 카라아치의 헤로인 도매가격은 킬로그램당, 9월11일 이전 가격인 4,800달러의 3분의1에 불과하다.

파키스탄 정부 소식통들은 전쟁이 끝나고 이 지역의 경비가 느슨해지기만 하면 다량의 헤로인이 카라아치의 항구를 떠나 서구 및 미국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뭐든 아프가니스탄 밖으로 내다 팔아 현찰을 마련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웬만큼 대담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어디건 경비가 워낙 철통같거든요. 조금 느슨해지면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고 파키스탄 군 소속 마약단속 반장인 리아카스 알리 노르 대장은 말한다.

한편 미국의 공습으로 인해 법 집행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수개 지역의 아프간 농부들이 새로 양귀비를 경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분석가들은 전한다. 유엔의 프라이는 자신도 2개 지역 농부들이 밀 대신 양귀비를 재배할 요량으로 밭을 갈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데 양귀비 밭은 평평하지 않고 굴곡을 만들기 때문에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면서 "작년 이맘때만 해도 아무도 양귀비를 심지 않았는데 정말 나쁜 징조다. 테러리즘 때문에 마약을 무시할 수는 없다. 둘은 서로 뒤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