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열의 경제칼럼 95
▶ <뉴욕 페이스대 석좌교수>
가을마다 뉴욕주 증권분석가협회에서 주최하는 강의 시리즈에서 경영분석을 강의하면서 협회 본부가 자리잡았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맨 위층에서 내려다보는 다운타운 맨해턴은 대단했다. 세계의 금융중심지로 알려진 월 스트릿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 건물들은 말 그대로 까마득한 벽들이었다. 이제 1970년 이후 건축된 최신 오피스 건물 스페이스의 60%가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이 금융 중심지는 영원히 옛날과는 달라져버린 것일까.
여러분들이 그동안 알고 계시던 월스트릿은 물론 다운타운의 길 이름으로 관광객들이 그 길 사인 옆에서 사진도 찍고, 감개무량한 경영경제학도들이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던 곳이다. 18세기 후반 회사 주식과 정부 채권을 팔던 중개인들이 이곳에 모여 거래가격에 대한 협정을 맺은 후 월 스트릿은 증권 금융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려면 꼭 있어야 했던 주소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은 런던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대공황을 전후로 월스트릿은 도리어 최전성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대공황은 그러나 사무실 공백률을 올렸고, 2차 대전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회사들은 서서히 미드타운 쪽으로 이사하는 경향이 생겼다. 주거용 건물이 주로 있던 미드타운은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에서 걸어서 일하러 갈 수 있는 데다 조금은 느긋하게 고급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조금씩 인기가 올라갔다. 새로운 사무실 건물들이 미드타운 쪽으로만 건설되는 추세가 계속되면서 2차대전 후 30년 동안 다운타운은 전혀 커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뉴욕 증권거래소의 규정 하나만 없었어도 다운타운의 쇠퇴는 더 심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증권결재에 필요한 서류 배달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도록 거래소 멤버 회사들의 건물이 월스트릿 가까이에 있도록 한 규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맨해턴 다운타운의 중흥에는 체이스 맨해턴 회장이었던 데이빗 록펠러의 역할이 컸다. 1960년대 초 체이스 본부 건물을 다운타운에 짓고 뉴욕 주지사였던 형 넬슨 록펠러와 함께 세계 무역센터 건물 건축에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미드타운의 록펠러 센터가 가진 상징적 의미에 해당하는 그런 곳을 다운타운에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세계 무역센터는 자기 회사 이름을 붙인 자기 건물을 갖고 싶어하는 금융회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정부 소유 토지 위에 지어서 렌트가 상대적으로 싼데도 불구하고 금융재무 관계 회사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것이다.
1987년 증권 폭락과 함께 월스트릿 지역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그러나 1990년 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여러 사무실 건물들이 주거용 아파트로 바뀌면서 다운타운은 다시 렌트가 올라가고 잠시 활기를 찾았다. 그것이 이번 참사의 바로 전 시기였던 것이다.
다운타운은 벌써 상당한 숫자의 재무금융 관계 회사들이 미드타운 쪽으로 옮긴 뒤라서 이번 참사 때문에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 쇠퇴의 속도가 좀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월스트릿, 그 이름은 이제 다운타운의 자리 얘기를 하는 데 쓰는 게 아니다. 다운타운, 미드타운, 뉴저지, 코네티컷 포함해서 맨해턴의 금융 중심지역을 지칭하는데 쓰는 상징적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의 월스트릿이 자리한 곳은 이제 주거지로서 더욱 그 주위가 각광을 받게 될 것 같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얘기가 실감나게 들리는 곳, 그곳이 월스트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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