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관따나모 기지’로 불리는 쿠바에 있는 미해군기지의 공식명칭은 ‘쿠바 관따나모만 미해군 기지’로 이곳에 주둔하는 미군장병들은 ‘지트모’(Gitmo)라 부른다.
쿠바 동부에 있는 45평방마일 넓이의 이 기지는 수마일에 걸친 레이저 철망과 이 철망 밖으로 쿠바가 설치한 지뢰밭에 감싸여 쿠바의 다른 지역과 분리된 채 카리브해에 대한 미해군의 제해권을 보장하고 있다. 제이미 서클리키 교수(마이애미대, 쿠바·멕시코 관계)에 따르면 카리브해는 미국에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곳을 장학할 수 있는 해군기지가 필요했다.
미국이 1898년 미서전쟁을 치르며 관따나모 기지를 처음 손에 넣었다. 1903년 미국은 매년 금화 2,000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새로 독립한 쿠바로부터 리스 조약을 체결했고 1934년 조약을 갱신, 미국이 원할 때까지 리스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1959년 쿠바 혁명에 따라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고 1961년 피그스만 침공사건과 1962년 미·소 미사일 위기를 맞아 기지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면서 1964년 카스트로 정권은 기지에 대한 급수를 중단, 미국은 현지에 식수오염 처리공장을 설립할 때까지 군함으로 식수를 공급했다.
1991년 아이티 쿠데타로 수많은 아이티 국민들이 ‘보트 피플’이 돼 미국으로 밀려들자 미국은 이들의 입국을 막기 위해 바다에서 체포한 난민 1만명을 관따나모 기지에 수용했고, 1994년 아이티와 쿠바 난민사태 때 이 기지에 수용된 난민은 6만명이나 됐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에도 난민 2만명을 관따나모에 수용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이 계획은 추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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