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은 미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회사였고 포춘지 등에서 ‘21세기에 가장 바람직하고 유망한 기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말 보너스가 얼마나 많았던지 해마다 1월만 되면 사원들이 차를 바꿔 파킹장에 포쉐와 벤츠가 널려 있을 정도였고 평직원 중에 엔론주식으로 재미를 봐 수백만달러씩 번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회사를 믿다보니 사원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401(k) 퇴직금을 회사주식으로 보유하게 되었고, 누구나 엔론사에서 쫓겨나게 될까봐 전전긍긍 했다. 왜냐하면 무능하거나 판매성적이 부진한 사원은 무자비하게 잘랐기 때문에 사내분위기가 항상 긴장되고 사원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그 금싸래기 같은 90달러짜리 주식이 지금 25센트가 되었으니 사원 3천명이 백만장자를 꿈꾸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셈이다.
엔론의 재정이 엉망인 것을 회계전문회사가 거짓장부를 꾸며 카버해주고 정치인들도 후원금을 받고 엔론사에 유리한 입법을 한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회사가 그 지경이 되어가는데도 왜 간부들이 회장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을까. 미국에서 대기업은 자기회사 주식값에 민감하다. 회사안에서 어떤 간부가 “우리 회사가 좀 이상하다. 경영이 부실한 것 아니냐”고 떠들면 그 말이 밖으로 새나가 당장 주식값이 곤두박질 친다. 고로 회사가 너무 커지고 대우가 좋아지면 할말도 못하게 되는 법이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이 받고 있는 처우도 보통이 아닌데 쓸데없이 만용을 부려 윗사람에게 찍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조용히 퇴장하게 되고 이때 물러나면서 회사로부터 충분한 보상도 받는다. 그리고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며칠전 자살한 엔론 전부회장 클리프 백스터도 그런 케이스였다. 그는 엔론이 길을 잘못가고 있다고 몇번이나 회장에게 얘기했으나 오히려 미움을 사 한직으로 몰리자 그만두어 버렸다. 바른 소리 하던 몇몇 재정담당관들도 모두 한직으로 밀려나고 회사내에서는 “잘 나가고 있사옵니다”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반면 백스터와 정반대의 길을 택한 용감한 참모도 있다. 엔론의 내막이 터진 것도 바로 이 참모 때문이다. 엔론의 여부사장인 샤론 왓킨스는 레이 회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엔론이 망하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있음을 경고하고 더 이상 사원들을 속이지 말 것을 촉구했다. 마침내 문제가 내부에서 터진 것이다.
왓킨스 부사장이 아니었더라면 엔론은 더 많은 빚을 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속였을 것이다. 왓킨스 부사장은 이번 엔론파동에서 유일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해고될 각오를 하고 회장에게 “아니 되옵니다”를 들이댄 용감한 간부사원이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목을 한번 만져봐야 한다. 충신은 종종 죽음을 면치 못하는 법이다. 당태종이 명재상 위징에게 충신이 되어줄 것을 당부하자 “저로 하여금 충신(忠臣)이 아닌 양신(良臣)이 되게 해 주옵소서” 했다는 고사가 있다. 충신은 잘못가는 임금에게 간하는 신하를 의미하고 양신은 훌륭한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를 말한다. 충신되는 날엔 잘못하면 3대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론사건은 회사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데도 간부들이 자기 이익에 취해 입을 다물고 있다가 더 큰 비극을 당한 케이스다. 바른 말 하는 간부들을 다 퇴출시키다보니 회사가 절벽에 이르렀고 마침내는 수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살려고 애쓴 참모는 권총자살 했고 죽기를 각오하고 바른 소리를 한 간부는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 없이 조용하기만 한 회사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 것이 엔론파동이 남긴 교훈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