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시절의 일이다. 내옆에 있는 훈병이 밤마다 불려 나갔다. 어느날은 연대장실에서, 어느날은 대대장실에서, 그리고 어떤때는 중대장실에서 그를 찾았다. 그리고는 힘든 훈련이 있는 날은 당번이라하여 그 친구는 내무반에 남아 있었다. 다른 훈병들이 그에게 “너는 도대체 무슨 빽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왈 자기는 전혀 빽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서 공부하다 겨우방학에 잠시 귀국했는데 입대영장이 나와 논산훈련소에 들어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럼 높은 사람들 사무실에 불려가 도대체 무얼 하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유학 가는 방법, 대학 분위기, 생활비 버는 파트타임, 그리고 미국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며 어떤 장교는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훈련소에서 그와 같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유학 가는 것이 소원이었고 미국서 온 사람은 어디가나 존경 받았다. 이 미국유학생 훈병이 받은 특별대우는 이같은 사회분위기에서 장교들이 보인 친절의 오버액션 덕분이었다.
20여년후 내가 겪은 경험은 정반대다. 80년대 초다. 미국온후 몇년만에 처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에 나갔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 냉면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홉살난 아들녀섯과 다섯 살 된 딸 아이가 영어로 떠들면서 장난을 쳤다. 이때 우리 옆좌석에서 건장한 남자 6명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큰소리를 지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떤 놈 왕년에 미국 안가본 놈 있나. 교포라는 XX들 말이야, 제 새끼한테 한국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일부러 영어만 쓰게 만든단 말이야. 그리고는 한국에 나와서는 우리자식들은 이렇게 영어를 잘 합니다 하고 으시대는거야. 원, 아니꼬워서”
그러더니 이 친구는 흥분하여 소주 잔을 밥상에 내리쳤다. 순간 우리 아이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던지 “대디, 저사람들 왜 저래?”하고 물었다. 나는 순간 심한 모욕감으로 냉면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았다. 그자리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식당을 나왔으나 그 불쾌함은 그 다음날까지 계속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한국말도 잘하고 한글도 쓸줄 안다.
그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 한국말을 더듬거렸고 자기네 끼리 장난치며 더편한 언어인 영어를 사용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쪽 사람들 사정을 전혀 모른채 그렇게 미주교포를 일갈해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그 사람이 보인 반응은 오버액션에다 컴플렉스 그 자체 였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상대방을 따귀때리는 식이다. 도의적으로 책임 물을 일인지는 몰라도 따귀 때릴 정도의 일은 아닌 것이다.
몇년전 친구가 서울에 나가 사업을 하는데 “미주교포가 영어단어 섞어 말하는것과 미국이야기 꺼내는것은 금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안다음 부터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강릉에서 살다왔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최근 인기가수 유승준씨의 미시민권 사건으로 떠들썩 하다. 그가 시민권을 신청해놓고 한국군에 입대할 것처럼 말한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상대적 박탈감을 자아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국의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일신의 안위를 위하고자 갖은 방법과 이유를 들어 국방의무를 회피하려는 비겁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공한을 띠운 것은 한참 도가 지나치다. 유승준사건이 과연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떠들만한 사건인가. 알레르기 반응이요 오버액션이다. 미주교포를 예외적으로 우대하는 것도, 턱없이 미워하는 것도 모두 컴플렉스다.
인기가수의 경솔과 정부당국의 치졸이 얽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 유승준 해프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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