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만큼 화제를 모은 종목도 없을 것이다. 심판이 잘못됐다 하여 며칠 후 은메달을 금메달로 끌어올려 결과적으로 금메달이 한 경기에서 두개나 탄생하는 이변을 낳았다.
피겨스케이팅이 올림픽에서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년 사이다. 미국 선수인 토냐 하딩이 보이프렌드를 시켜 동료인 낸시 케리건의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테러 청부를 한데서부터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피겨스케이팅계의 비정한 경쟁을 외부인들이 실감한 것도 이 ‘백조와 흑조’ 사건에서다.
여성 스포츠에서 프로골프나 테니스는 몇 사람이 오랫동안 주름잡을 수 있지만 피겨스케이팅은 체조와 비슷해 20세가 넘으면 몸이 무거워져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 크리스 에버트, 나브라틸로바, 셀레스, 그래프와 같은 존재가 불가능하다. 올림픽 출전이 항상 고별경기나 마찬가지고 다음에 또 출전하고 싶어도 후배들에게 밀려 턱걸이 정도도 어려워진다. 전혀 예기치 않은 젊은 신예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민 전부가 94년 릴리해머 동계올림픽 때 테러 당한 낸시 케리건이 우승하기를 바랐으며 유례 없는 후원을 보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우크라이나의 16세 소녀 옥사나 바이울의 기묘한 트리플 점프를 당할 수가 없었다.
금메달 바로 앞에까지 갔다가 신출내기 소녀들의 트리플 점프 묘기에 넉아웃된 선수는 케리건뿐만이 아니다. 미셸 콴도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15세의 타라 레핀스키의 대담한 트리플 점프에 금메달을 빼앗겼다. 최선을 다하고도 은메달에 머문 미셸 콴이 눈물 흘리던 모습은 관중들의 동정을 얻고도 남았다.
’전화위복’은 바로 미셸 콴을 위해 생겨난 단어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딴 레핀스키를 칭찬했으며 의젓한 자세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하딩과 케리건의 관계를 잊지 않고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콴의 겸손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레핀스키의 아버지가 돈에 욕심을 내 어린 딸을 프로로 전향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콴의 스포츠 정신은 더욱 인정을 받았다. 콴은 은퇴하지 않고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하고 각종 대회에 백의종군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선수들은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누가 유니폼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느냐가 화제다. 98동계올림픽 선수단이 클린턴을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유니폼을 전한 주인공은 금메달리스티인 레핀스키가 아니라 은메달의 콴이었다. 그만큼 콴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이 해프닝으로 화가 난 레핀스키의 부모들은 US올림픽위원회가 주최하는 일체의 행사를 보이코트 했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스포츠가 피겨스케이팅이다. 그러나 딸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돈방석에 앉게 되었을 때 부모가 지나친 욕심을 부려 딸의 이미지를 구겨 놓는 것 역시 피겨스케이팅이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 부문에서 프랑스팀이 러시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여 화제지만 따지고 보면 러시아인이 금메달을 따 프랑스에 선물한 격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여자선수 아니시나가 러시아인데다 최근 프랑스 국적을 땄기 때문이다. 그녀가 시상식에서 프랑스 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보인 무표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의 최대 화제는 미셸 콴이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 화제고 놓쳐도 화제다. 콴은 월드 챔피언 6회, US 챔피언 4회 우승, 그리고 심판위원들로부터 평균만점 6.0을 받은 적이 있는 피겨스케이팅계의 신화이며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인에 꼽히기 때문이다. 금메달만이 올림픽의 전부가 아니다.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사람이 바로 미셸 콴이다. 일본계의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중국계의 미셸 콴이 미국 피겨스케이팅의 꽃으로 등장한 것은 동양계 이민 모두에게 자랑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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