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미국인들은 우주비행사 존 글렌의 역사적인 지구궤도 선회를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글렌은 지난 1962년 2월20일 미국 우주 비행사로는 최초로 지구궤도에 진입, 세 바퀴를 선회하는 데 성공했다. 이 쾌거로 미국은 당시 소련과 대등하게 우주경쟁의 장에 서게 됐다.
글렌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 80세인 글렌은 20일 워싱턴에 있는 나사(국립항공우주국)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비행 전체과정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렌이 ‘우정 7호’라고 이름 붙인 이 소형 머큐리 캡슐은 두 가지의 하이라이트를 연출했다. 하나는 캡슐의 자동조종 장치 고장이고 다른 하나는 캡슐이 불덩이로 변한 대기권 재진입이었다.
"자동조종 장치가 고장이 나서 곧바로 수동작동에 들어갔다"
당시 전투기 조종사였던 해병중령 글렌은 오래 전부터 우주비행을 꿈꾸고 있었다.
우주센터는 우정 7호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캡슐외부 단열재가 공기마찰로 발생하는 엄청난 고열을 견뎌낼지 우려했다.
글렌 중령은 재진입시 캡슐 창문을 통해 불덩어리 파편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함께 불타죽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파편은 역추진 로켓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고 글렌은 마침내 무사히 귀환했다.
재진입할 때 두절됐던 우주센터와의 교신이 재개된 순간 글렌은 "나의 상태는 양호하다. 하지만 캡슐은 진짜 불덩이였다"고 말했다.
글렌이 탄 캡슐이 지구궤도를 선회하는 동안 모든 미국인들은 TV와 라디오에 눈과 귀를 모았다.
우정 7호는 1961년 4월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지구궤도비행 성공으로 흔들렸던 테크놀러지에 대한 미국의 신뢰감을 단숨에 회복시켜 주었다.
"당시 나사는 우주 정복을 위해 소련과 필사적인 경쟁을 벌였지만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4시간 55분간의 우정 7호 비행은 미국인의 정신을 새롭게 했다"
나사의 션 오키프 국장은 말했다.
우주 비행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오하이오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으로 4선을 지낸 글렌은 지난 1998년 우주왕복선에 승선, 다시 우주에 복귀하는 꿈을 이뤘다.
글렌은 우주탐험이 과거에 비해 매우 괄목할 발전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는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었다. 소련은 자신들의 정치 시스템이 우수한 테크놀러지를 낳았다고 자랑했었다. 미국의 우주선은 발사대에서 폭발하는 등 실패의 연속이었다. 대조적으로 소련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 냉전은 종식됐고 양국은 우주탐험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날 글렌과 오키프 국장은 국제 우주정거장에 체류 있는 세 명의 우주인들과 전화로 통화했다. 한 명의 러시아 우주인과 두 명의 미국 우주인으로 구성된 탑승원들이 방금 우주 유영을 끝마치고 우주정거장에 귀환한 후였다.
글렌은 현재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40년 전 역사적 우주비행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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