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8월 말부터 몇 달 동안 한국에 있었다. 그동안 9.11사태가 터졌고 그 사건을 TV를 통해 보며 견디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느꼈다. 그런 끔찍한 악 앞에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이러한 감정은 나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오사마 빈 라덴에 동정적인 사람들이 한국에 그토록이나 많은가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들은 차마 미국을 향해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마치 일제에 저항했던 안중근 의사라도 되는 듯이 그래서 은근히 미국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방향으로 기사를 썼고 TV에서는 많은 부분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미운동이나 반전시위 같은 것을 골라 방영하는데 할애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미국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국가들을 짓밟고 부를 쌓은,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악랄한 국가이고 그래서 전 세계가 반미국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느끼기에는 온통 나라 전체가 미국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더 슬픈 것은 조국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뚜렷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보다 잘살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나 국가에 대한 까닭 없는 질시와 악한 감정을 가지고 미국을 조롱했고 미워했다. 나라 전체 국민의 정서가 이렇다면 과연 앞으로 우리 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찔렀다.
지금까지 그래도 조국을 사랑해 왔고 그리운 내 고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악의가 온 나라 안에 넘실댄다고 생각하니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나라 사람이구나, 하고 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에 나가서 놀란 것은 거의 욕설에 가까운 거친 언어들이 마치 ‘솔직하고 직설적인 언어’이기라도 한 듯이 착각되어진 채 함부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문에서도 너무 많은 극단적인 단어들이 활자화되고 영화 속에서나 일상언어에서도 차마 듣기 거북하고 추잡한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렇게 거칠기 짝이 없는 극단적인 말을 자꾸 쓰다보면 보통 쓰는 정상적인 언어들이 싱겁게 느껴지고 그러다 보면 더 극단적인 말을 찾게 되고 그러면 감성도 점점 더 극단적이 되고… 그래서 온통 나라 안이 조폭에 욕설에 미움의 강물로 철철 넘쳐흐르게 되지 않겠는가.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정서가 이렇게 된 이면에는 기성세대들, 그 중에서도 말과 글을 책임지고 있는 신문이나 영화 같은 미디어, 그리고 작가들에게도 책임이 크다고 본다.
비록 대중들이 생각 없이 마구 말을 뱉는다 하더라도 대중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순화된 말 쓰기를 계속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국민들의 언어도 곱게 변하게 될 것이 아닌가. 제발 대중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국민들의 언어를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가야할 책임을 통감하고 말과 글을 조심스럽게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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